타르코프스키 [1332076] · MS 2024 (수정됨) · 쪽지

2024-09-27 20:39:29
조회수 2,327

교수들의 관심사 엿보기-네이버 열린연단(1편)

게시글 주소: https://oldclass.orbi.kr/00069301824

안녕하세요 독서칼럼에 진심인 타르코프스키입니다.

여러분, 혹시 네이버 열린연단을 아시나요. 네이버가 2014년부터 10년간 연재해온 고품격 대중학술 강연 시리즈인데요. 2024년 8월에 막을 내렸다고 합니다. 명성이 높은 교수, 석학들이 각자 전공 분야에 대해 상세하게 강의해준다니 정말 귀한 자료입니다. 심지어 강의록 전문까지 무료로 제공됩니다. 악명 높은 헤겔, 포퍼, 미학, 영화 이론 등의 내용을 전공 교수의 직강으로 폭넓게 습득할 수 있습니다. 수능 국어 출제진의 후보이자 학계를 이끌어가는 교수들의 관심사, 태도,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희소한 자료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없을 수험생들에게 직접 보라고 하기 어려우니, 강의록을 바탕으로 지문이라도 제작해보기로 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들어갈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의 익숙함이라도 가져가기 위해서, 딱 한 문단을 읽을 시간 정도는 할애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에 공부할 것이 이렇게 많은데, 구태여 외면하고 읽어보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핸드폰 켠 김에, (1) 그리스-로마 문화와 기독교의 교류, (2) 플라톤 이래 윤리, 쾌락, 예술 등을 철학적으로 풀어낸 아래 인문 지문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글을 완독하면 적어도 15개의 개념어를 얻어갈 수 있습니다.
-호교론자(護敎論者), 셉투아진타(Septuaginta, 70인역), 알렉산드리아 학파, 영지주의(Gnosticism), 데미우르고스(Demiurgos), 호모우시오스(homoousios), 감성적 이념, 자기 목적성, 반성적 판단, 심미적 승화, 향락(주이상스), 성실한 의식의 변증법, 무한정자(τὸ ἄπειρον), 마테시스(μάθησις),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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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문제 1)

출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43590&rid=2956 

그리스 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만남

강연자 : 박승찬 가톨릭대 철학과 교수강연일 : 2020. 09. 19

참조 및 재구성.


그리스도교의 정전(正典, canon)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규범적 문서로서, 그리스 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의 융합 속에서 성립되었다. '정전'이라는 용어는 히브리어 '카네(qaneh, 갈대, 막대기)'에서 유래하였으며, 초대 교회의 교부(敎父)들이 그리스도교 신앙과 행동의 기준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정전은 공동체 안에서 책들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독특성과 보편적 가르침을 모두 파악해야 한다. 그리스 로마 문화는 다신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어 신과 인간이 동일 지평에 속하며, 인간이 노력에 따라 신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그리스도교는 유일신적 사상을 가진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신과 인간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격이 있기에 구원은 오직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상이한 세계관은 초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로마 문화 사이에 갈등을 일으켰고, 그리스도교는 조롱과 박해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호교론자(護敎論者)들은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순교자 유스티누스(Justin Martyr)이다. 그는 플라톤주의 등 여러 철학을 탐구하였으나 참된 지혜를 발견하지 못하고,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진리를 찾았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자들이 추구했던 진리가 그리스도교를 통해 완전해졌다고 주장하며, 철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교 교리를 설명하였다. 성경의 정경화 과정에서도 문화적 교류가 있었는데,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셉투아진타(Septuaginta, 70인역)'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10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책들을 정경에서 제외하였고, 이것이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성경의 차이를 낳았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도입하여 종합하려 하였으며, 철학을 신앙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였다. 클레멘스는 그리스 철학이 신의 섭리에 따라 주어진 선물이라고 보았고, 오리게네스는 철학을 통해 신학을 체계화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노력은 그리스도교 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으며,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철학의 융합을 촉진하였다. 결국, 그리스도교의 정전은 그리스 로마 문화와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는 서양 문명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선택지>
- 초기 그리스도교는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아 다신교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었으며, 이는 그리스도교 정전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교에서 진리를 발견한 후에도 그리스 철학을 계속해서 발전시켰으며, 이를 통해 그리스도교 교리의 변화를 주도했다.
-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클레멘스는 철학을 신학의 주된 이론으로 사용하지 않고, 단순히 보조적인 역할만을 수행하였다.
- 그리스 로마 문화와의 융합 과정에서 그리스도교는 철학적 개념을 배제하고, 엄격하게 유대교의 전통만을 고수하였다.
- 그리스도교의 정전은 주로 로마 제국 말기에 형성되었으며, 초기 교회 시절에는 정전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힌트>
- 초기 그리스도교는 철학적 요소를 도입했으나, 다신교적 요소는 포함하지 않았다.
-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거부하고, 오히려 그리스도교 진리만을 강조하였다.
- 클레멘스는 철학을 신학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려 했으며, 주된 이론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 그리스도교는 철학적 개념을 도입하여 유대교 전통과 융합을 시도하였다.
- 그리스도교의 정전은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초기 교회 시절부터 정전의 개념이 존재하였다.

<선택지>
- 정전의 형성 과정에서 그리스 로마 문화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갈등은 미미했으며, 두 사상은 자연스럽게 융합되었다. 이는 그리스 로마의 다신교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의 유일신 사상이 본질적으로 유사했기 때문이다.
-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에서 완전한 진리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를 재해석하였다. 그의 노력으로 그리스도교는 철학적 토대를 갖추게 되었고, 이는 정전 형성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었다.
- 셉투아진타의 번역 과정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의 언어적 차이로 인해 실패하였고, 이로 인해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경전이 완전히 분리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두 종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도입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들은 철학이 신앙을 왜곡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며, 순수한 그리스도교 교리만을 강조하였다.
- 그리스도교의 정전 형성 과정에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은 제한적이었으며, 주로 유대교의 전통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이로 인해 서양 문명의 형성에 그리스도교가 미친 영향은 미미했다.
<힌트>
- 지문에 따르면, 그리스도교와 그리스 로마 문화 사이에는 상당한 갈등이 있었으며, 두 세계관은 본질적으로 달랐다. 그리스 로마 문화는 다신교적이었고, 그리스도교는 유일신 사상을 가졌다.
- 유스티누스는 여러 철학을 탐구했지만 최종적으로 그리스도교에서 진리를 찾았다. 그는 그리스 철학이 추구한 진리가 그리스도교를 통해 완전해졌다고 주장했으며, 그리스도교에서 진리를 발견한 것이지 그리스 철학에서 발견한 것이 아니다.
- 셉투아진타는 약 10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번역 과정이 실패했다는 언급은 없다. 오히려 이 번역은 그리스어권 유대인들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
-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는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도입하여 종합하려 했으며, 철학을 신앙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했다. 그들이 철학 도입을 반대했다는 내용은 지문과 모순된다.
- 지문은 그리스도교의 정전이 그리스 로마 문화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것이 서양 문명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 로마 문화의 영향이 제한적이었다는 진술은 부적절하다.

<선택지>
- 그리스도교는 그리스 로마 문화의 다신교적 세계관을 수용하면서 인간도 노력을 통해 신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형성하게 되었다.
-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에서 참된 지혜를 발견하고, 이를 바탕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하고자 하였다.
- 셉투아진타는 히브리어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으로, 유대교, 가톨릭, 개신교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인정되는 정경이다.
-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 철학을 배척하고 오직 성경의 가르침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그리스도교의 정전은 그리스 로마 문화와의 교류 없이 독자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이후 서양 문명에 영향을 미쳤다.

<힌트>
- 그리스도교는 다신교가 아닌 유일신 사상을 가진 유대교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은 신이 될 수 없고 오직 신의 은총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본다.
- 유스티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통해 참된 지혜를 찾지 못하고, 그리스도교에서 진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 셉투아진타는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이며, 유대교는 히브리어 원본이 없는 책들을 정경에서 제외했기 때문에 가톨릭, 개신교와 성경의 차이가 발생했다.
-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그리스 철학을 신앙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도입하고 종합하려 했다.
- 그리스도교의 정전은 그리스 로마 문화와의 상호 작용을 통해 형성되었으며, 서양 문명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호교론자(護敎論者)"는 그리스도교를 변호하고 설명하기 위해 그리스 철학을 활용한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로, 순교자 유스티누스와 같이 플라톤주의 등 여러 철학을 탐구하여 그리스도교 교리를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 "셉투아진타(Septuaginta, 70인역)"는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렉산드리아에서 약 100년에 걸쳐 완성되었으며, 이후 가톨릭과 개신교 성경의 차이를 낳는 계기가 되었다.

-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로 대표되는 초기 그리스도교 사상가들로, 그리스 철학을 그리스도교 신학에 도입하여 종합하려 했으며, 철학을 신앙의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여 그리스도교 신학의 발전에 기여하였다.




(연습문제 2)

출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43590&rid=2956

참조 및 재구성.


기독교가 그리스 철학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영지주의(Gnosticism)라는 이단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물질 세계를 악으로 보고 영혼과 물질의 이원론적 대립을 주장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신의 구원론적 지식인 '영지(靈智)'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으며, 물질을 창조한 데미우르고스(Demiurgos)를 악한 신으로 간주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세상을 선하게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 정통 기독교와 충돌하였다. 마르키온주의(Marcionism)는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 조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구약의 신을 복수와 공포의 신으로, 신약의 신을 자비와 사랑의 신으로 구분하였다. 또한 마니교(Manichaeism)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의 극단적인 이원론을 제시하여 세상의 선과 악을 설명하였다. 이러한 이단들에 대응하여 정통 기독교 학자들은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이단 사상을 논박하고 신학을 발전시켰다. 그러나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us)와 같은 일부 교부들은 철학이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보아 그리스 철학의 수용을 거부하였다. 그는 "아테네와 예루살렘 사이에 공통된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신앙이 이성보다 확실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르툴리아누스는 '페르소나(persona)'와 같은 철학 용어를 도입하여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데 기여하였다. 아리우스(Arius)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자 개념을 성부에게 적용하여 성자를 피조물로 간주하는 아리우스주의(Arianism)를 주장하였고, 이는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성자 예수가 성부와 '동일 본질(homoousios)'임이 선언되며 반박되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에페소 공의회(431년), 칼케돈 공의회(451년)를 통해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대한 교리가 확립되었다. 카파도키아의 세 교부는 그리스 철학을 활용하여 신학적 개념을 정교화하였고, 이는 중세 철학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 철학은 신의 초월적 질서에 따라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며, 세계를 선하게 창조한 신의 질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는 『신국론』에서 신적 질서와 인간의 구원을 논하였으며, 인간을 신의 모상으로 창조된 존재로 보았다. 플라톤주의와 신플라톤주의의 초월적 사상은 중세 신학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과 『삼위일체론』은 이러한 융합을 보여준다. 반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은 스콜라 철학자들이 신학을 체계화하는 데 활용되었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는 『신학대전』에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바탕으로 신앙과 이성의 합일을 이룩하였다.

<선택지>
- 영지주의자들은 물질 세계를 선으로 간주하며, 신의 창조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 마르키온주의는 신약과 구약의 신이 동일하며, 두 신이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적극 수용하여 신학을 발전시켰으며,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 아리우스는 삼위일체론을 지지하며, 성부와 성자가 동일 본질임을 주장하였다.
- 중세 철학은 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신플라톤주의의 형이상학을 배제하고 발전하였다.

<힌트>
- 영지주의는 물질을 악으로 보았으며, 신의 창조를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 마르키온주의는 구약과 신약의 신을 구분하며 조화를 주장하지 않았다.
-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거부하고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였다.
- 아리우스는 삼위일체론을 반박하며, 성자를 피조물로 간주하였다.
- 중세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활용하여 발전하였다.

<선택지>
- 영지주의는 물질 세계를 선으로 보고, 신의 구원론적 지식인 '영지'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는 세상을 악하게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을 믿는 정통 기독교와 충돌하였다.
- 마르키온주의는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구약의 신을 자비와 사랑의 신으로, 신약의 신을 복수와 공포의 신으로 구분하여 기독교 교리의 일관성을 강조하였다.
-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의 수용을 전면적으로 거부하였으나, 역설적으로 '페르소나'와 같은 철학 용어를 도입하여 삼위일체론을 설명하는 데 기여함으로써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 아리우스주의는 신플라톤주의의 일자 개념을 성자에게 적용하여 성자를 성부와 동일 본질로 간주하였고, 이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기독교 교리의 핵심이 되었다.
- 중세 철학은 신의 초월적 질서에 따라 세계와 인간을 바라보며 세계를 악하게 창조한 신의 질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이성과 신앙의 대립을 강조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귀중한 철학적 유산을 남겼다.
<힌트>
- 영지주의는 물질 세계를 악으로 보았으며, 정통 기독교는 세상을 선하게 창조한 전지전능한 신을 믿었다.
- 마르키온주의는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이 조화될 수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구약의 신을 복수와 공포의 신으로, 신약의 신을 자비와 사랑의 신으로 구분하였다.
-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의 수용을 거부하였으나, '페르소나' 개념을 도입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를 통해 신앙과 이성의 조화를 추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 아리우스주의는 성자를 피조물로 간주하였으며,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오히려 성자가 성부와 동일 본질임이 선언되어 아리우스주의가 반박되었다.
- 중세 철학은 세계를 선하게 창조한 신의 질서에 대한 확신을 바탕으로 이성과 신앙의 조화를 추구하였다.

<선택지>
- 영지주의자들은 데미우르고스를 숭배의 대상으로 여겼으며, 물질 세계의 구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마르키온주의는 구약과 신약의 신을 동일시하면서도, 그 성격을 재해석하여 신의 속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 마니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의 투쟁을 통해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으며, 인간은 이러한 역사 발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을 전적으로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기 위해 '페르소나'라는 철학 용어를 차용하여 활용하였다.
- 아리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자 예수가 성부와 동일본질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였다.

<힌트>
- 영지주의자들은 데미우르고스를 악한 신으로 보았고, 물질 세계를 악으로 보아 구원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 마르키온주의는 구약의 신과 신약의 신을 조화될 수 없는 별개의 존재로 보았다.
- 마니교는 선한 신과 악한 신의 이원론을 제시했지만, 인간의 역사 참여에 대한 주장은 지문에 언급되지 않았다.
- 테르툴리아누스는 그리스 철학이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한다고 보아 수용을 거부했지만, 역설적으로 삼위일체론 설명에 철학 용어를 사용하였다.
- 아리우스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았고, 아리우스주의는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영지주의(Gnosticism)"는 물질 세계를 악으로 보고 영혼과 물질의 이원론적 대립을 주장하는 초기 기독교의 이단적 사상으로, '영지(靈智)'라는 특별한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 "데미우르고스(Demiurgos)"는 영지주의에서 물질 세계를 창조한 악한 신으로 간주되는 존재로, 이는 전지전능하고 선한 신을 믿는 정통 기독교의 창조관과 대립되는 개념이다.

- "호모우시오스(homoousios)"는 니케아 공의회에서 선언된 개념으로, 성자 예수가 성부와 '동일 본질'임을 나타내는 용어로, 아리우스주의의 주장을 반박하고 삼위일체 교리의 기초를 마련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연습문제 3)

출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10011&rid=2908

향유, 쾌락, 심미적 형식

강연자 : 김상환 서울대 철학과 교수강연일 : 2016. 10. 15

참조 및 재구성.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쾌감을 작품의 형식적 구조인 플롯의 효과로 보아 감상자의 주관적 감정을 작품이라는 객관적 근거에 기반하여 설명하였다. 그러나 근대 미학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전도되어, 예술 작품의 객관적 가치인 아름다움이 예술에 고유한 심미적 쾌락에 의해 정초되며, 이 쾌락은 주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데카르트는 『음악약론』에서 음악의 아름다움을 수학적 비례관계라는 객관적 조건과 감각기관에 쾌감을 주는 감성적 쾌락이라는 주관적 조건 두 가지를 통해 분석하였다. 그는 음악의 목적을 쾌감을 주고 다양한 정념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다고 보았으며, 비가나 비극에서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느껴지는 이유를 상반되는 감정들이 하나로 통일될 때 쾌감이 증폭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러한 심미적 쾌락은 단순한 감성적 쾌락을 넘어 욕망, 기대, 회상 등의 영혼의 반성적 자기 자극을 통해 심화되며, 이는 주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능동적 요소들과 맞물려 있다. 데카르트는 이러한 쾌감이 최고조에 이르기 위해서는 놀라움이나 경이의 감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경이(驚異)는 대상의 유용성이나 선악 여부를 판단하기 전에 경험되는 순수한 수동적 감성의 상태로, 모든 정념의 근원이며 예술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영혼의 자기 자극이 개인마다 다르므로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반면 칸트는 심미적 판단이 개념 없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니므로 아름다움의 보편적 근거를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감성 고유의 논리를 통해 미학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인식 능력들 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심미적 판단의 구조를 해명하였다. 칸트는 심미적 쾌락을 무관심한 만족감으로 규정하며, 이는 감관의 관심이나 이성의 관심과 무관하게 경험되는 쾌락으로서,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정신의 활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는 예술 작품이 외재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는 자기 목적성(自己目的性)을 지녀야 하며, 아름다움은 감성적 이념의 현시(Darstellung)를 통해 표현된다고 보았다. 여기서 감성적 이념은 상상력에 의해 포착되지만 개념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것으로, 예술가는 이러한 감성적 이념을 현시하는 천재(genius)로 간주된다. 칸트는 또한 규정적 판단과 반성적 판단을 구분하여, 심미적 판단이 반성적 판단으로서 기존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보편성을 창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현대에 이르러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술적 창조와 기술적 장인 정신이 융합되고 있으며, 이는 들뢰즈와 가타리가 언급한 우주 시대의 특징이다. 이러한 시대에는 예술이 기술이 되고 기술이 예술이 되어, 전통적인 예술의 개념이 재구성되고 있다. 결국 근대 미학에서 강조되었던 자연과 예술의 구분은 오늘날 새로운 방식으로 재해석되고 있으며, 예술 작품은 더 이상 유용성에 종속된 공예품이나 상품과 구별되지 않을 수 있다. 이로써 예술이 지닌 자기 목적성과 심미적 가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며, 이는 칸트 이후 셸링, 니체 등에 의해 전개된 예술가-형이상학적 관점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논의는 현대 사회에서 예술의 위치와 역할을 재정립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따라서 심미적 쾌락의 발견과 주체의 내면적 경험에 대한 탐구는 근대 미학의 탄생과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이는 오늘날까지도 예술 철학의 중요한 기반을 이루고 있다.

<선택지>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쾌감을 감상자의 내면적 기대감보다는 작품의 외형적 요소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하였다.
- 데카르트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오직 감성적 쾌락에 의해서만 분석할 수 있다고 보았다.
- 칸트는 예술 작품이 외재적 목적을 추구해야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 근대 미학에서는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이 주로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긴다.
- 들뢰즈와 가타리는 우주 시대에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예술의 본질을 유지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주장하였다.

<힌트>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쾌감을 플롯의 형식적 구조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지, 감상자의 내면적 기대감과는 관련되지 않았다.
- 데카르트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감성적 쾌락뿐만 아니라 수학적 비례관계로도 분석하였다.
- 칸트는 예술 작품이 외재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자기 목적성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 근대 미학에서는 아름다움을 주로 주체의 내면적 심미적 쾌락을 통해 평가하였다, 작가의 의도와 메시지보다.
- 들뢰즈와 가타리는 예술과 기술의 융합이 예술의 개념을 재구성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본질을 방해한다고 보지 않았다.

<선택지>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쾌감을 감상자의 주관적 감정에 기반하여 설명하였으며, 이는 근대 미학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온 관점이다.
- 데카르트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오직 수학적 비례관계라는 객관적 조건을 통해 분석하였으며, 주관적 감정의 개입을 배제하였다.
- 칸트의 심미적 판단 이론에 따르면,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은 개인의 주관적 경험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보편적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
- 근대 미학에서는 예술 작품의 객관적 가치인 아름다움이 예술에 고유한 심미적 쾌락에 의해 정초되며, 이는 주로 작품의 형식적 구조에 의해 결정된다.
- 현대 예술에서는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술 작품은 반드시 자기 목적성을 지녀야 하며 유용성에 종속된 공예품이나 상품과 명확히 구별되어야 한다.
<힌트>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쾌감을 작품의 형식적 구조인 플롯의 효과로 보아 객관적 근거에 기반하여 설명하였다. 근대 미학에서는 이러한 접근이 전도되어 주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 데카르트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수학적 비례관계라는 객관적 조건과 감각기관에 쾌감을 주는 감성적 쾌락이라는 주관적 조건 두 가지를 통해 분석하였다.
- 칸트는 심미적 판단이 개념 없는 보편성과 필연성을 지니므로 아름다움의 보편적 근거를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 근대 미학에서는 예술 작품의 객관적 가치인 아름다움이 예술에 고유한 심미적 쾌락에 의해 정초되지만, 이는 주체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중심으로 설명된다.
- 현대에 이르러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술 작품은 더 이상 유용성에 종속된 공예품이나 상품과 구별되지 않을 수 있다. 이로써 예술이 지닌 자기 목적성과 심미적 가치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선택지>
- 아리스토텔레스는 예술 작품의 아름다움이 감상자에게 주는 쾌락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주관적인 감정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 데카르트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분석하면서 수학적 비례와 같은 객관적인 요소를 배제하고 오직 감각기관의 쾌락만을 중시하는 감성적인 접근 방식을 취했다.
- 데카르트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영혼의 자기 자극을 경험하기 때문에 아름다움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있다고 믿었다.
- 칸트는 심미적 쾌락을 감관의 만족이나 이성적인 사고와 연관된 것으로 보았으며,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보다는 규칙과 개념에 기반한 판단을 강조했다.
- 현대 예술에서는 기술과의 융합을 통해 예술 작품의 자기 목적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으며, 예술은 유용성이나 상품성과 완전히 분리된 순수 예술의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힌트>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쾌감을 작품의 형식적 구조인 플롯의 효과로 보아 객관적 근거를 강조했다.
- 데카르트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분석할 때, 수학적 비례관계라는 객관적 조건과 감성적 쾌락이라는 주관적 조건을 모두 고려했다.
- 데카르트는 영혼의 자기 자극이 개인마다 다르므로 아름다움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고 보았다.
- 칸트는 심미적 쾌락을 감관의 관심이나 이성의 관심과 무관하게 경험되는 쾌락, 즉 무관심한 만족감으로 규정했으며, 이는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 속에서 정신의 활력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현대 예술에서는 예술과 기술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예술 작품이 유용성이나 상품성과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감성적 이념"은 칸트가 제시한 개념으로, 상상력에 의해 포착되지만 개념으로 완전히 파악될 수 없는 것을 의미하며, 예술가는 이를 현시하는 천재로 간주된다.

- "자기 목적성"은 칸트가 주장한 예술 작품의 특성으로, 작품이 외재적 목적에 종속되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개념이다.

- "반성적 판단"은 칸트가 규정적 판단과 구분한 개념으로, 기존의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새로운 보편성을 창출하는 심미적 판단의 방식을 말한다.



(연습문제 4)

출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10011&rid=2908

참조 및 재구성.


예술가-되기는 아이-되기의 과정이며, 이는 니체의 낙타, 사자, 아이로 이루어진 정신의 형태변화와 연결된다. 낙타는 외적 의무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며 강인함을 상징하고, 사자는 이러한 외적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권위를 파괴하여 자유를 얻는다. 그러나 사자의 자유는 부정의 대상을 전제로 하기에 완전하지 못하며, 진정한 자유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아이에 의해 이루어진다. 프로이트는 농담을 통해 예술의 기원을 설명하며, 이는 어른이 유아 시절의 자유로운 쾌락을 회복하는 말놀이로서의 농담에서 비롯된다. 농담은 이성의 검열을 통과하면서도 유아적 유희의 쾌락을 되살리며, 이는 왜곡과 타협의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다. 예술적 상상력은 사회적 상상력을 포함하며, 이는 단순한 몽상이 아닌 현실원칙에 따라 타인과 소통하기 위한 것이다. 헤겔은 성실한 의식의 변증법에서 인문학자가 내면에 침잠하여 기만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지만, 이러한 개별적 고립은 공동체의 근원적 이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다. 칸트는 천재적 재능인 예술가가 취미에 의해 길들여져야 보편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고 보며, 이는 예술이 광기와 문화적 규범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함을 의미한다.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을 통해 심리 기관이 안정성을 추구한다고 설명하지만, 반복 강박과 같은 현상은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죽음충동의 존재를 시사한다. 죽음충동은 라캉에 의해 근친상간 금지를 넘어 '물(das Ding)'로의 회귀를 추구하는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되며, 이는 쾌락원칙과 도덕법칙의 경계를 넘는 향락(주이상스)의 경험으로 나타난다. 향락은 쾌와 불쾌의 구분을 무너뜨리며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소멸시키지만, 이는 환상 속에서만 가능하며 현실에서는 도착이나 범죄로 나타날 수 있다. 라캉은 이러한 향락을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창조적인 형태로 전환시키는 방법으로 심미적 승화를 제시한다. 승화는 대상이 '물'의 자리로 상승하여 주체와의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만족을 얻는 과정으로, 예술은 이 승화의 탁월한 예시이다. 심미적 승화를 통해 주체는 사회적 규범을 일탈하지 않으면서도 욕망을 표현하고, 이는 새로운 질서와 가능성을 열어주는 창조적 활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예술가는 향락의 주체로서 승화를 통해 사회와 욕망을 연결하고, 공동체의 발전에 기여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선택지>
- 프로이트는 예술가가 창작 과정에서 무의식의 억압된 욕구를 표현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는 꿈의 분석과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 헤겔은 예술적 상상력이 단순한 개인의 몽상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을 초월하는 절대적 진리를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 라캉은 예술가들이 향락을 통해 물질 세계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본다, 이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문다.
- 칸트는 예술이 윤리적 교훈을 전달하는 주요한 수단이며, 이는 예술가의 도덕적 책임을 강조한다고 주장한다.
- 니체는 예술이 인간의 생존 본능을 강화하며, 이는 사회적 진화를 가속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힌트>
- 지문에서는 예술의 기원이 농담과 유희에 있다고 언급하지, 꿈의 분석과 연관짓지 않는다.
- 지문에서는 헤겔이 사회적 이념의 형성에 개인 고립의 필요성을 강조하지만, 절대적 진리 창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 지문에서는 라캉이 향락을 문화적 현상으로 해석하며, 예술가의 승화에 대해 논의하지만, '물질 세계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는 언급되지 않는다.
- 지문에서는 칸트가 예술가의 천재적 재능과 승화에 대해 언급하지만, 윤리적 교훈이나 도덕적 책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 지문에서 니체는 예술가의 정신 변화 과정과 자유 창조에 대해 언급하지만, 예술의 역할을 생존 본능 강화나 사회 진화 가속화와 연결시키지는 않는다.

<선택지>
- 니체의 낙타는 외적 의무와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강인함을 상징하지만, 사자는 이러한 구속을 파괴하여 완전한 자유를 얻는다. 아이는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만 사자보다 덜 자유롭다.
- 프로이트의 농담 이론에 따르면, 예술의 기원은 성인이 유아기의 자유로운 쾌락을 되찾는 과정에서 비롯되며, 이는 이성의 검열을 완전히 우회하여 순수한 유아적 유희를 실현한다.
- 헤겔의 성실한 의식의 변증법은 인문학자가 내면에 침잠하여 기만에 빠질 수 있음을 지적하며, 이러한 개별적 고립은 공동체의 근원적 이념 형성에 장애물이 된다고 주장한다.
- 칸트에 따르면, 천재적 재능을 가진 예술가는 취미에 의해 길들여져야 보편적 설득력을 얻을 수 있으며, 이는 예술이 광기와 문화적 규범 사이의 균형을 완전히 배제해야 함을 의미한다.
- 라캉의 향락 개념은 쾌와 불쾌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소멸시키는데, 이는 현실에서 항상 도착이나 범죄로 나타나므로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없는 개념이다.
<힌트>
- 지문에 따르면 사자의 자유는 부정의 대상을 전제로 하기에 완전하지 못하며, 진정한 자유는 아이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명시되어 있다.
- 농담은 이성의 검열을 통과하면서도 유아적 유희의 쾌락을 되살리는 것이며, 완전히 우회하는 것이 아니라 왜곡과 타협의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다고 설명되어 있다.
- 헤겔의 관점에서 개별적 고립은 공동체의 근원적 이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명시되어 있으며, 장애물이 된다는 언급은 없다.
- 칸트의 견해는 예술이 광기와 문화적 규범 사이의 균형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며, 완전히 배제해야 한다는 언급은 없다.
- 라캉은 향락을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창조적인 형태로 전환시키는 방법으로 심미적 승화를 제시하며, 이를 통해 예술이 가능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선택지>
- 니체는 낙타, 사자, 아이의 단계를 거쳐 예술가가 된다고 주장하며, 이는 예술적 창조가 필연적으로 고통과 희생을 동반함을 의미한다.
- 프로이트는 농담과 예술의 유사성을 강조하며, 농담은 무의식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반면, 예술은 이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방식으로 승화시킨 형태라고 보았다.
- 헤겔은 예술가의 내면적 침잠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져 공동체와의 단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이는 칸트의 예술적 천재 개념과 상반되는 견해이다.
- 라캉은 향락을 쾌락원칙을 뛰어넘는 죽음충동의 발현으로 보고, 이를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형태로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주장한다.
- 프로이트는 반복 강박을 쾌락원칙에 위배되는 현상으로 간주하지만, 라캉은 이를 '물(das Ding)'로의 회귀 욕망으로 해석하며, 심미적 승화를 통해 이러한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본다.

<힌트>
- 니체는 예술적 창조 과정에서 고통이나 희생을 언급하지 않았다. 낙타, 사자, 아이는 정신의 형태변화를 설명하는 비유일 뿐, 예술가-되기 과정과 직접적인 관련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 프로이트는 농담이 무의식적 욕망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고 보지 않았다. 농담은 이성의 검열을 통과하면서도 유아적 유희의 쾌락을 되살리는 왜곡과 타협의 기술이다.
- 헤겔은 예술가의 내면적 침잠이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고 우려하지 않았다. 오히려 헤겔은 이러한 개별적 고립이 공동체의 근원적 이념을 형성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 라캉은 향락을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형태로 승화시키는 것이 예술의 역할이라고 단정하지 않았다. 예술은 심미적 승화의 한 가지 예시일 뿐이며, 심미적 승화가 향락을 다루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주장하지 않았다.
- 프로이트는 반복 강박을 쾌락원칙에 위배된다고 보았지만, 라캉은 반복 강박을 '물(das Ding)'로의 회귀 욕망으로 해석하지 않았다. '물(das Ding)'은 근친상간 금지를 넘어서는 회귀를 추구하는 문화적 현상이며, 반복 강박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진다고 볼 수 없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심미적 승화"는 라캉이 제시한 개념으로, 욕망과 향락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형태로 전환하는 과정을 의미하며, 예술 창작에서 이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화가가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로 승화시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 "향락(주이상스)"은 라캉의 정신분석 이론에서 쾌락원칙을 넘어서는 강렬한 경험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쾌와 불쾌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주체와 대상 간의 거리를 소멸시키는 특성을 가진다. 이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느끼는 압도적인 감정이나, 극단적인 스포츠 활동에서 경험하는 아찔함과 희열이 공존하는 순간 등으로 이해할 수 있다.

- "성실한 의식의 변증법"은 헤겔이 제시한 개념으로, 인문학자나 예술가가 내면에 깊이 침잠하여 개인적 진실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기만과 고립의 위험성을 지적하면서도, 이러한 과정이 공동체의 근원적 이념 형성에 필수적임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소설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고독하게 집필에 몰두하는 과정은 개인적 고립을 수반하지만, 그 결과물은 사회에 새로운 통찰을 제공할 수 있다.



(연습문제 5)

출처: https://openlectures.naver.com/contents?contentsId=110011&rid=2908

참조 및 재구성.


쾌락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있어 행복한 삶을 논의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플라톤의 『필레보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쾌락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이성과 쾌락이 조화를 이루는 "혼합된 삶(μεῖκτος βίος)"이 최선의 삶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쾌락을 존재의 네 가지 범주 중 하나인 무한정자(τὸ ἄπειρον)로 분류하며, 쾌락과 고통은 고정된 경계 없이 무한정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쾌락은 그 자체로 선한 것이 아니며, 적절한 이성의 개입과 혼합을 통해서만 진정한 쾌락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쾌락은 자연적 조화의 파괴와 회복 과정에서 발생하며, 완전성을 향한 결여의 충족으로서 이해된다. 따라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은 이성적 삶에서 오는 앎에 대한 열망과 그 충족에서 비롯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미메시스(μίμησις)를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경향으로 보며, 모방을 통해 지식을 배우는 과정인 마테시스(μάθησις)가 쾌락의 근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시각을 통한 감각의 즐거움이 "사물들의 여러 가지 차이성들"을 드러내어 경이(θαυμάζειν)를 불러일으키고, 이는 학문의 추구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은 본성적으로 유용성에 무관심한 순수한 앎을 추구하며, 이는 가장 강렬한 쾌락의 원천이 된다. 예술적 재현은 이러한 미메시스와 마테시스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특히 비극은 고유한 쾌락인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를 통해 감상자의 감정을 순화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서 플롯(μῦθος)이 "비극의 생명과 영혼"이며, 연민과 공포를 유발하여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가져온다고 보았다. 이때 카타르시스는 도덕적 자각과 영혼의 성숙에 수반되는 즐거움으로 이해되며, 이는 비극에만 고유한 쾌감이다. 또한, 그는 예술의 중심축이 리듬과 성격에서 플롯으로 이동하였음을 지적하며, 이는 시적 사유가 이론적 사유에 종속되었음을 나타낸다. 결국,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과 행복, 앎과 예술의 본질을 탐구하면서,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쾌락은 이성적 깨달음과 도덕적 성숙에서 온다는 결론에 이른다.

<선택지>
-플라톤은 『필레보스』에서 쾌락이 행복의 전부라고 주장하며, 이성과의 조화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을 통한 지식 습득이 쾌락의 근원이 아니며, 주로 청각을 통한 감각이 중요하다고 본다.
-플라토는 쾌락을 자연적 조화의 회복 과정과 무관하게 설명하며, 이성보다는 감정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 연민과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즐거움을 증대시키는 수단으로 본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두 쾌락과 행복이 완전히 별개의 개념이며, 서로 관련이 없다고 결론짓는다.

<힌트>
-플라톤은 쾌락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이성과 쾌락의 조화를 강조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방을 통한 지식 습득을 쾌락의 근원으로 보았고, 주로 시각을 강조하였다.
-플라톤은 쾌락을 자연적 조화의 회복 과정과 관련지었고, 이성을 중요시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을 통해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유도한다고 보았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과 행복이 이성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았다.

<선택지>
- 플라톤의 『필레보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쾌락이 행복의 필요충분조건이며, 이성과 쾌락의 분리가 최선의 삶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미메시스를 인간의 후천적 습관으로 보며, 모방을 통한 지식 습득이 쾌락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단정한다.
- 플라톤은 쾌락을 존재의 네 가지 범주 중 하나인 한정자로 분류하며, 쾌락과 고통은 명확한 경계를 지니고 유한하게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서 연민과 공포를 유발하는 것이 카타르시스의 본질이며, 이는 도덕적 퇴보와 영혼의 퇴락에 수반되는 불쾌감이라고 설명한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게 있어 진정한 쾌락이 감각적 체험과 물질적 풍요에서 비롯된다고 결론짓는다.
<힌트>
- 지문에 따르면 소크라테스는 쾌락이 행복의 전부가 아니며, 이성과 쾌락의 조화를 이루는 "혼합된 삶"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 지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미메시스를 인간의 본성에 새겨진 경향으로 보며, 모방을 통한 지식 습득(마테시스)이 쾌락의 근원 중 하나라고 설명한다.
- 지문에 따르면 플라톤은 쾌락을 무한정자로 분류하며, 쾌락과 고통이 고정된 경계 없이 무한정 이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 지문은 아리스토텔레스가 카타르시스를 도덕적 자각과 영혼의 성숙에 수반되는 즐거움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한다.
- 지문의 결론에 따르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쾌락이 이성적 깨달음과 도덕적 성숙에서 온다고 보았다.

<선택지>
- 플라톤은 쾌락을 무한정자로 분류하면서 쾌락과 고통이 혼합된 상태를 최고의 쾌락으로 보았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유용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쾌락을 느낀다고 보았으며, 이는 예술 작품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감각적인 것으로만 보았고, 이성적인 깨달음은 쾌락과 무관하다고 여겼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의 플롯 분석을 통해 시각적 즐거움이 지적 탐구로 이어지는 과정을 설명했다.
-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이 행복의 전부라고 여겼으며, 특히 예술적 쾌락을 중시했다.

<힌트>
- 플라톤은 쾌락과 고통이 혼합된 상태가 아닌, 이성과 쾌락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최고의 삶으로 보았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본성적으로 유용성에 무관심한 순수한 앎을 추구하며, 이는 가장 강렬한 쾌락의 원천이 된다고 보았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을 이성과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이성적 깨달음과 도덕적 성숙에서 진정한 쾌락을 찾았다.
-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에서 플롯을 분석하여 카타르시스를 설명했으며, 시각적 즐거움과 지적 탐구의 연결은 『시학』에서 다루어진다.
-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모두 쾌락이 행복의 전부라고 여기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 자체보다는 쾌락을 수반하는 활동, 특히 인간의 이성적 활동과 관련된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글에서 얻어갈 개념 3가지>

- "무한정자(τὸ ἄπειρον)"는 플라톤이 제시한 존재의 범주 중 하나로, 쾌락과 고통처럼 고정된 경계 없이 무한히 이어질 수 있는 개념을 의미하며, 이는 현대 철학에서 연속체나 무한성 개념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 "마테시스(μάθησις)"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언급한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으로,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부모의 행동을 따라하며 세상을 배우는 것처럼 인간의 기본적인 학습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 "카타르시스(κάθαρσις)"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고유한 쾌락으로 설명한 개념으로, 연민과 공포의 감정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정화하고 도덕적 자각을 일으키는 과정을 의미하며, 현대 심리학의 감정 정화 이론의 기초가 되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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