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냐넌? [846347] · MS 2018 (수정됨) · 쪽지

2019-02-14 13:36:39
조회수 29,689

실패한 장수생이 말하는 N수의 주의점 3편

게시글 주소: https://oldclass.orbi.kr/00021449851


[인사말]





드디어 3편이네. 2편은 아무 퇴고 없이 올렸더니 글이 개판이더라 ㅎㅎ 아무튼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내 글이 단 몇 명에게라도 도움이 된다면 좋겠어.






[서문]





몇몇 학생들은 대학의 이름값이 왜 중요하냐고 반문을 해. 대학 잘 나온 것이 그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잣대가 될 수 없다고.


하지만 난 그 말에 동의를 못해. 예전부터 아버지는 “1등도 습관이다.”라고 많이 말씀하셨어. 그 말을 내 방식대로 해석하자면 “노력도 습관이다.”가 돼.


수십만 명의 수험생과 경쟁하며 그들 위에 서기 위해서는 재능 혹은 노력이 필요해.


일시적인 노력으론 불가능하지. 가장 먼저 꾸준함이 필요하고, 그에 더해 1,2편에서 언급했던 ‘노력의 질’을 높이는 방법을 알고 있어야만 남들 위에 설 수 있어.


한 번 노력을 해본 인간은 설령 아무것도 모르는 다른 분야에서도, 노력하는 법을 알고 노력하는 습관이 배어있기에 빠르게 일을 습득하고 발전해나가.


우리 동생 같은 경우는 야구 선수가 되기 위해 야구를 전문적으로 했는데 남들이 봐도 기가 질릴 정도로 피나는 노력을 했어.


결국 부상 때문에 야구를 그만두고 맨바닥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단 1년 만에 나름 내세울만한 성과를 얻어서 대학을 갔지. 심지어 머리도 그다지 안 좋은 편인데 말이야.


운동을 통해 '꾸준히 노력하는 습관'과 ‘피나게 노력하는 방법’ 터득했기에 나올 수 있던 성과였던 거야.


동생은 운동을 하듯 공부를 했고, 그랬기에 악조건 속에서도 준수한 결과를 쟁취했지.


이와 같이 너희들이 수험 생활을 하면서 노력하는 법을 체화할 수 있다면, 설령 수능을 위해 공부했던 지식이 아무 쓸모가 없더라도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능력을 습득한 것이 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 가치를 부여하기에 좋은 대학을 치켜세워주는 거고 좋은 성적을 얻은 사람들을 인정해주는 거지.


그러니 지금 하는 공부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기 보다는 스스로를 갈고 닦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열중해 주었으면 싶어.


잔소리는 여기까지. 본문으로 갈게.






[본문]





6. 성적을 올리기 위해 안전성을 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 걸 추천한다.




이번 주제는 사람에 따라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있으니, 그저 개인의 의견 중 하나로 들어주었으면 한다.




2019 수능에서 가장 HOT했던 과목이라면 분명 국어일 것이다.


이번 수능 국어가 흥미로웠던 점은, 수능 직후 많은 교육 전문가들이 국어가 쉽게 나왔다고 평했다는 것이다.


시험을 본 입장에서 때려죽이고 싶은 개소리이긴 했지만 시험을 되새겨보니 왜 저런 말이 나왔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킬러로 작용하던 비문학 지문이 압도적일만큼 어렵지는 않았으며, 그 대신 화.작.문이 칼춤을 추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문가들이 이제까지 킬러로 작용했던 비문학만 분석해서 국어 전체의 난이도를 평했다면 딱 저런 결론이 나왔을 테니까.



필자도 시험 당일 국어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1년 내내 푼 모든 사설 모의고사보다 수능 국어가 더 어려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국어 시험이 시작하고 40분이 지나자 미친놈마냥 실실 쪼개면서 문제를 풀었는데-


‘낄낄낄, 문제 낸 꼬라지를 보니 이번에 국어 조질 새끼들 조낸 많겠네. 낄낄낄.’


↑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필자또한 ‘국어 조질 새끼들’ 사이에 포함될 가능성이 참으로 높았지만, 거기까지 생각이 이어지는 순간 멘탈이 남아나지 않을 게 분명했기에 철저히 남 망하는 것만 되새기며 문제를 풀어갔다.


허나 큰 시험에 약한 필자는 마지막에 가서 멘탈이 무너졌고, 결국 끝에 가서 푼 문법과 문학에서 2점짜리만 3개를 헌납하며 94점을 받았다.


94점.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였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나쁘진 않은 점수였다. 이는 필자가 시험을 잘 본 탓이 아니라, 많은 아이들이 제 발에 걸려 많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1,2편에서 계속해서 말해왔다. 개념은 편식하지 말고 머리에 때려 박고, 문제가 출제되는 유형들은 될 수 있는 한 정리해서 체화시키라고.


허나 유형을 체화시키라는 충고를 오독해서, ‘수능에서 특정 유형은 무조건 쉽게 나올 것이다.’라고 단정 짓는 케이스가 굉장히 많다.


선입견과 방심을 유형에 대한 체화로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크게 상관없다. 본래 쉬울 거라 여겼던 부분이 어렵게 나왔으면 그 난이도에 맞춰서 풀면 되니까.


정말 큰 문제는 미리부터 특정 유형을 가소롭게 보고 가볍게 접근하는 경우다.


필자가 멘탈이 털렸음에도 객관적으로 나쁘지 않은 국어 성적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평소에 화작문을 가소롭게 보거나, 최대한 빠르게 풀어 시간을 남길 파트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빠르게 풀려고 노력은 했지만 화작문에 접근하는 방식과 단계 자체는 비문학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문제를 풀면서도 ‘씁... 이거 내가 알던 화작이 아닌데.’라고 투덜거렸지만 평소에도 화작문을 꼼꼼히 풀어왔기에 큰 걸림 없이 무난하게 넘어갈 수 있었다.


허나 많은 아이들이


화작문은 쉬운 파트/시간을 아껴야 하는 파트/적당히 보고 툭툭 찍어도 답이 나오는 파트


라고 여기고 안이하게 접근을 시도했고 그 탓에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며 화작문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심심찮게 N수생보다 현역이 국어를 더 잘 보았다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이 때문이다. 비교적 현역 아이들이 적은 선입견으로 국어를 접근했고, 그 때문에 초반에 덜 당황했을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음...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필자가 지금 문제를 풀 때 스킬을 쓰지 말라는 게 아니다.


일반적인 스킬은 당연하고, ‘3분 만에 한 지문 끝내기’ 같은 도박에 가까운 스킬도 다급하면 써야 된다.


꼼꼼히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빠르게 푸는 것또한 중요한 것을 알고 있다. 정확성과 속도 둘 중에, 어느 것에 비중을 두어야 될지는 개인마다 의견이 다른 것또한 알고 있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본'은 지키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이 기본이라는 것은 쉬운 파트를 수능에서 100% 확률로 맞히기 위해 배분시켜야 할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을 가리킨다.


방금 말한 화작문의 경우 많은 아이들이 "화작문 정도는 훑듯이 빠르게 풀어도 다 맞을 확률이 높다. 이걸 똑바로 풀 시간에 비문학을 위한 시간을 마련하겠다."라고 주장하며 대충 푸는 행위를 반복했다.


허나 그 아이들 대부분은 모의고사를 다섯 번 보면 한 번 쯤은 화작에서 발이 미끄러졌고, 조금만 화작의 난이도를 올려도 주르륵 긁혀나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때까지 그러한 고집을 이어갔고 알다시피 결과는 처참했다.


대체 왜 그러는 지 솔직히 모르겠다. 2편에 언급했지만, 항상 최선의 결과가 우릴 따라올거라 여기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사고다. 수능에서 가장 우선되어야할 목적은 최선의 결과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결과를 막는 것이다.


쉬운 문제를 빠르게 풀 수 있다면 최대한 빠르게 풀되, 적어도 틀리는 일은 없도록 해야 한다.


쉬운 문제는 대충 풀어 넘기고 거기서 번 시간으로 킬러 문제도 다 푼다? 그렇게 대충 푼 문제는 다 맞고 킬러도 다 맞아서 수능대박을 친다?


우리는 도박하러 수능장에 가는 것이 아니다. 대박을 칠 확률은 좀 줄이더라도 안정적인 점수를 얻어야 될 필요성이 있다.


수능 대박쳤다는 정말 많은 후기가 있고, 특이한 꼼수나 스킬을 이용해서, 틀릴 문제 네다섯 개를 더 맞혔다는 썰도 많다.


허나 수능에서 본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조지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장수까지 한 입장에서 필자도 수능장 들어갈 때마다 대박을 꿈 꿨기는 했지만, 그건 정말 선천적으로 배포가 큰 작자나 찍신이 강림한 작자가 '얻어 걸리는' 거다.


특히나 큰 시험에서 긴장을 많이 하는 스타일 같은 경우 지나친 욕심이 화가 되어서 돌아올 확률이 매우 높다.


배짱이 큰 게 아니라면, 맞을 걸 먼저 확실히 다 맞을 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화작문이 아무리 쉽더라도 정석적으로 풀어서 확실히 다 맞고 지나가는 것이 맞고, 수학 3점짜리가 아무리 쉽더라도 머리가 계산기가 아닌 이상 암산보다는 손으로 풀어서 정확도를 높이는 것이 맞다.


아찔할 정도의 긴장감 속에서 실수할 확률은 평소의 제곱으로 뛴다. 제발 쉬운 문제를 무시하지 말고 반드시 챙겨가야할 필수적인 점수로 생각하자.



결론을 내리자면, 어떤 과목이든 쉬운 파트에서 빠른 풀이를 통해 시간을 벌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래야 고난이도 부근을 풀 수 있으니까.


문제는 그 시간을 벌기 위해 어디까지를 희생하느냐다.


아무리 쉬운 문제라도, 적어도 열 번 풀어서 열 번 다 맞을 정도의 공은 들여서 풀어야 된다. 그에 더해 평가원의 장난질로 인해 어느 정도의 난이도 상승까지는 고려해서 대비해야 된다는 게 내 입장이다.


막말로 이번 수능 국어 화작문이 그리 어려웠나하면 그건 아니잖나. 비문학보다는 훨씬 쉬웠다. 다만 선입견을 가지고 대충 진입해서 늪에 빠진 것처럼 허우적거린 게 문제였지. 모두가 화작문에서 방심만 안 했다면 1컷이 6점은 뛰었을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의 배포가 크지 않다고 여긴다면, 부디 안전성을 우선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수능은 도박하려고 가는 곳이 아니다.





7. 독학은 추천하지 않는다.




지금 말하려고 하는 독학은 쌩독학에 가깝다만 인강만으로 공부를 하는 것도 어느 정도 포함된다.


물론 인강만 있어도 열심히만 한다면 성적은 잘 오른다. 필자도 쌩으로 삼수하면서 대부분 과목을 3등급에서 1등급까지 올리는데 성공했다.



허나 독학은 두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 번째는 문제는 갑작스런 난이도 상승(특정 파트 난이도 상승 or 전반적인 난이도 상승)에 대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독학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기출을 위주로 공부하게 된다. 새로운 자료를 개인이 만들고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필자가 물리2를 독학할 때도 기출을 위주로 공부했는데 이게 9월 평가원 모의고사 때까지는 먹혔다.


근데 수능에서 망했다. 근 7년 동안 평이했던 물리2의 난이도가 급격히 상승했기에, 기출에 길들여진 필자로서는 대처하기가 불가능했다.


이런 사태를 피하기 위해선 인강으로 공부하더라도 수능 전에 다양한 사설 모의고사와 고난도 문제를 접해볼 필요가 있다. 급격한 난이도 상승 사태와 마주쳤을 시 어느 정도 대처를 할 수 있게 된다.


두 번째 문제는 시야가 좀 좁아지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혼자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다.


아무래도 인강은 피드백이 자유롭지 않다보니 의외로 오개념 같은 게 생겨도 바로바로 수정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더 심각한 것은, 헷갈리는 파트가 있으면 선생 가랑이를 붙잡고 물고 늘어져서라도 끝장을 봐야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해서 기본이 제대로 잡힌 학생이라면 상관없는데, 노베이스인 경우는 확실히 학원을 좀 겸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자료 수집 같은 것에서 개인이 한계를 느낄 수 있으니, 독학충에 가까운 필자가 이런 말하기도 뭐하지만 돈이 된다면 학원을 껴라. 차이점이 분명 존재한다.





8. ETC




국어와 과탐 과목에 대한 간단한 조언 -



국어 :


국어만큼 문제 푸는 스킬을 단련하는 게 중요한 과목이 없는 것 같다. 핵심은 자신에게 최적화된 풀이를 찾는 것이다.


필자 같은 경우는 순서대로 문제를 풀되, 문법을 가장 마지막에 풀었다.


이유는 간단한다. 화법/작문/비문학/문학은 지문에서 답을 구해야했지만 문법만은 머리에 지닌 지식을 끌어 써야 했기 때문이다.


지문을 읽고 푼다/지문을 읽으며 외웠던 문법 지식을 사용해서 푼다


이 둘은 비슷하지만 조금 머리 굴리는 방식이 달랐고, 필자는 머리 굴리는 방식의 스위치를 바꾸는 게 좀 힘든 편이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가장 안정적으로 점수가 나오는 것이 순서대로 풀기 + 문법만 마지막으로 풀기 이었고 끝까지 이를 고수했다.




과탐 :



지구과학


무조건 가져가라. 이건 가장 중요한 사항이다. 필자는 끝까지 지구과학을 안 가지고 갔지만 꽤 후회하는 사항이다.


지구과학을 가져가라는 이유는 단순하다. 단순 암기 과목에 가깝다보니 사탐마냥 다 풀어도 시간이 좀 남고 계산을 거의 안 해도 된다. 안 그래도 수능 막바지에 머리가 오버 히트된 상태에서 지구과학은 가뭄 속의 단비다.



물리


개인의 취향을 참 많이 타는 과목이다.


물리는 현실에서 발생하는 일들을 수학과 수식으로 재해석하는 과목이기도 한데, 이를 쉽게 받아들이는 이는 잘 받아들이지만 어려워하는 아이는 매우 어려워한다.


3등급 맞기는 어렵지만 1등급 맞기는 쉬운 과목이다. 일단 깨달음(...?)을 얻으면 아주 가깝게 다가오는 과목이며, 무엇보다 킬러 문제가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서 작정하고 유형 몇 개만 쑤셔 넣으면 만점도 비교적 쉽게 노려볼 수 있다.



생명


물리와 반대다. 3등급 맞기는 정말 쉬운데 1등급에서 만점 받기는 어렵다.


의외로 수학적 재능이 매우 필요하다. 경우의 수를 따지는 감각이 매우 뛰어나야 킬러 문제를 잘 대비할 수 있다.


1년마다 미친 듯이 뛰어오르는 킬러 문제 난이도 때문에 N수를 해도 매년 새롭다. 공부량을 꾸준히 가져가야하는 피곤한 과목이다. 다만 물리/화학에 비해 초반 접근이 쉬워서 인기가 많다.



화학


킬러 문제의 정형화에 대해선 물리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물리보다는 경우의 수 따지는 감각이 좀 더 필요하다고 한다.


물리와 생물의 특성을 반반 섞어놨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직접 안 해보고 듣기만 해서 더 자세한 설명은 못하겠다.




N수를 할 때 생기는 멘탈의 문제 -



N수를 하다보니 혼잣말이 부쩍 늘어나더라.


공부할 때 외워야 될 게 있을 경우 중얼중얼거려야하는데 그게 습관이 되었어. 물론 사람들과 잘 안 만나던 것도 한 몫 했던 것 같고. 다만 수험 생활 끝나면 의외로 금방 사라진 습관이니 크게 신경 안 써도 될 것 같아.


N수생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자존감과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발생하는 정신적인 문제겠지.


수능에 대한 회의감도 오고 은연중에 남들 눈치도 더 보게 돼. "저 사람은 나를 대체 어떻게 생각할까? 속으로 나를 엄청 무시하고 있지는 않을까?" 뭐 이런 피해의식이 자꾸만 머릿속을 어지럽히지.


대처하기 쉽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인 건 아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팬을 놓지 않는 거야.


멘탈 핑계되면서 놀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어. 놀아서 스트레스가 줄어들면 모르겠는데 도리어 스트레스만 더 쌓인다. 자기 할 일 미뤄두고 노는데 마음이 편하겠냐?


물론 제자리에 앉아서 책을 봐도 자꾸만 회의감에 잡아 먹혀서 딴 생각하게 되기도 해. 그래서 나는 수능 세 달전부터 거의 서서 공부했어. 다리 조금 불편하니 오히려 잡생각이 좀 물러서고 집중도 더 잘 되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능 막바지에 이르니 부담감과 자기 혐오 때문에 멘탈이 남아나질 않더라.


미칠 것 같은 상황에서, 날 끌어올려 준 건 재수하는 친구가 해주었던 한 마디였어.


같은 수업을 듣던 재수생 여자 아이가 있었는데, 내가 한 번 물었었거든.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냐. 맨날 복도 나와서 하루 종일 서서 책 보고 있는데 미친놈처럼 보이진 않았냐. 한심하게 바라보진 않았냐. 저 새끼 뭐하는 새끼인가 하고 조소하진 않았냐."


그 때 그 여자 아이가 이렇게 대답했어.


"저는 오빠를 보고 정말 열심히 공부한다고 감탄했어요. 그 모습을 보고 배워야겠다고도 생각했고요. 그래서 한 번 복도에 나와서 서서 공부해봤는데, 집중은 잘 되는데 다리 아파서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이게 듣기 좋으라고 한 소리인지 진심이 5%라도 섞였는지 알 수는 없어. 다만 그 한마디가 속에 곪아 터지고 있던 피해의식을 단번에 날려버렸지.


멘탈이 흔들릴 때, 필요한 건 결국 따뜻한 말 한마디인 것 같아. 정신적으로 힘들 때 그 한 마디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가 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 그렇다고 친구 찾아가서 술 쳐마시지 말고.


여담으로 그 여자 아이 덕분에 수능 직전의 한 달을 안정된 마음으로 보낼 수 있었어. 그 점이 너무 고마워서 밥 한끼라도 비싼 걸 사주고 싶었는데 어째 그 얘도 수능을 망친 것 같더라고.


3수 준비하느라 연락도 잘 안 받고 문자를 해도 단답만 날아와. 너랑 얘기하기 싫다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기에 답장도 제대로 못했어.


뭐, 장수생으로서 그 기분을 백 번 이해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아쉽기도 하더라. 경험자(...)에게 조금 도움을 구했으면 좋았을텐데 말이지. 뭐, 다음 수능은 꼭 성공하길 기원한다, 주연아.





[마무리]




참 긴 수험생활이었어. 욕해도 되나? ㅎㅎㅎ


후배들이 적은 시행착오로 최선의 결과를 얻길 바랐기에 수기를 써본다.


많은 부담을 가지고 N수를 시작하겠지만, 의외로 너무 결과에 압박을 느낄 필요는 없어. 나도 막상 수능을 조진 것 같았는데, 그래도 KY 전화기 간다고 하니까 외할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더라.


원래 전교에서 꼴찌 하던 꼴통이었는데(479명중 472등 했으니) 명문대 간다고 하니 놀라워하시더라고. 안 그래도 외가쪽에서는 공부와 인연 있는 인물이 거의 없다보니 명문대 이름값이 더 크게 다가오신 것 같아.


친구들도 긴 수험 생활 끝냈다고, 그리고 꼴찌하던 새끼가 나름의 결과를 냈다고 축하해 줬고.


부모님께서도 참 시험 못 보는 타입이라고 꾸중을 하시면서도 그 동안 고생많았다고 박수 쳐 주셨어.


돌이켜보면 시원섭섭해.


어쨌든 너희들은, 이러니저러니해도 부모님께 폐가 되기 전에, 그리고 스스로의 자존감을 잃기 전에 만족할만한 결과를 내기 바랄게.




2019/2/14


늦깎이 신입생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글을 마친다. 후배들은 모두 좋은 결과를 얻길.


0 XDK (+10)

  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