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찾아서
삶의 의미를 찾아서
산다는 것은 고통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고통에서 의미를 찾아내야 한다.
삶이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목적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면,
죽어가는 마당에서라도 반드시 목적이 있게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타인에게 삶이 어떠한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대신 결정해 줄 수 없다.
이러한 삶의 목적은 반드시 각자가 스스로 찾아내야할 것이며,
스스로가 발견해 낸 그 대답이 함의하고 있는 책임을 받아 들여야 한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글은 수평으로 읽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잡고 있는 책의 내용은 같은 길이의 문자열의 나열입니다.
하지만 책을 읽는 우리들의 생각의 속도나 시선의 흐름은 수평적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현재 관심사 혹은 누적되어온 경험과 생각이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단어들의 조합에 각기 다른 무게감을 부여합니다.
서두에 제시한 문단은 ‘아우슈비츠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정신과의사,
빅터 프랭클이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언급한, 실존주의 본질에 관한 내용입니다.
실존주의가 내포하는 사상은 우리들의 삶이 ’부조리’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에 던져진 존재지만 죽음은 필연적이며,
이것이 삶을 비대칭적으로 만드는 근원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무의식에는 이러한 기조가 깔려있었는지,
서두에 제시한 문장들을 읽을 때의 무게감은 상당했습니다.
이유 모를 방황
생각할 능력이 부족한 어린 아이들, 혹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생각할 능력을 잃어버린 이들을 제외한다면,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은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이러한 고민에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남들보다도 약간 더 깊게, 약간 더 빨리 허우적거렸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 당장의 결정이 미래를 모두 결정할 것처럼
아이들에게 압박감을 주는 고등학교 시절, 에는 그저 시키는 대로
열심히 시험 준비나 하면서 꿈만 휙휙 바뀌는,
그깟 모의고사나 못 봤다고 울기나 하고 혼자 주변거리를 배회하던 학생이었습니다.
저의 고등학교의 생활기록부에는 1학년 기자, 2학년 의사, 3학년 정치인이라고
장래희망이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꿈은 휙휙 바뀌었고,
적어 놓은 저것들도 정말로 제가 원하는 것이라고 확신하지도 못합니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성숙과정이 필요하니까요.
나름 성실하게 고등학교 생활을 했음에도 찾아온 재수와 삼수시기에는
이러한 이유 모를 방황이 극에 달했습니다.
독학재수시기에는 컴컴한 7인용 독서실에서 홀로 책을 읽으며
네다섯 시간을 내리 흐느끼던 적도 있었고, 책상에 머리를 대고 있다가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듯 지하철을 타고 사람 많은 서울도시 곳곳을 찾아다니기도 했습니다.
삼수시절에는 자습시간에 뛰쳐나와 학원근처를 어슬렁거렸고,
처음 산 스마트폰으로 그리웠던 그녀의 페이스북등의 SNS를 뒤져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계획 없이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기도 하고,
혼자 영화를 보러다니기도 하는 등 모두다 방향성 없는 행동들이 이어졌습니다.
이렇듯, 애매한 과정을 거치고 입학한 대학생시절에는 외적으로는 문제될 것들이 적어졌지만
내적으로는 조금 더 공허해졌습니다.
그래도 수험시절에는 대학입학이라는 목표라도 있었지,
대학 새내기에는 그저 허공에 붕 뜬 느낌?
물론, 다수 새내기의 관점은 아니겠지만 수험생활을 보상해주겠다던 대학생의 자유는
자유라는 탈을 쓴 청춘의 좌충우돌이었고, 이런 식의 자유만을 추구하며
시간을 흘려보낸다면 스스로가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원인모를 상실감이 나를 짓누를 때 즈음.
필요이상의 생각에 갇힐 때 즈음.
수험생에서 대학새내기가 된지 한 달 정도 지났을 때 즈음.
밀려왔던 과제를 제출했습니다. 그 과제는 정신과 상담이었습니다.
정신과 치료는 이전부터 정말 도움을 받고 싶었지만,
수험결과에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피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이유가 사라지고, 의사선생님말씀으로는 ‘가장 좋아야할’
대학 새내기시절에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좋아야할‘ 대학 새내기시절을 항우울제와 항불안제에 의지하며 살았습니다.
신기하게도 모든 것들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더군요.
자식이 정신과치료를 받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하는 부모님의 마음만 빼구요.
로고 테라피
저에게 있어서 대학 새내기 시절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목표였던 서울대 진학에 실패하고 차선인 연세대에 만족한 것?
혹은 입시로 미뤄두었던 사춘기적 정체성문제가 폭발하여서?
그것도 아니라면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호르몬인 세르토닌의 분비량이 적어서?
모든 것이 이유일 수도 있고, 모든 것이 이유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다시, 원인모를 상실감. 이유모를 방황.
사실,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에는 언어적 역설이 있습니다.
저는 저의 대학 새내기 문제를 원인모를 상실감. 이유모를 방황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문제점에 대해 탐구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하지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의문의 끈을 놓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 끈마저 놓으면 제가 잡고 있는 끈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끈을 놓고 있지 않는 동안에 미약하게나마,
답변이 될 수도 있는 하나의 선택지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죽음의 수용소에서’ 의 저자가 말한 ‘로고 테라피’였습니다.
로고테라피는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심리치료기법, 인간을 바라보는 방법론중의 하나입니다.
이전까지는 인간의 정신을 분석할 때 프로이트 학파가 중점을 두고 있는 '쾌락 의지'나
아들러 학파에서 우월하려는 욕구로 불리우는 '권력 추구의 의지'를 통해 인간을 해석하였습니다.
로고 테라피는 이와는 달리 키르케고르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에
중점을 둔 실존론적 분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권력이나 쾌락과 달리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주요 원천이 되는
삶의 의미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이며, 이것이 인간 존재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자극이자
원동력이 된다고 여기는 믿음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배불리 먹고 살수는 있어도 좋은 직장 구하기, 좋은 아파트 구하기,
좋은 배우자 구하기는 정말로 어려운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뜬구름 잡는 것 같은가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정신분석학자이자 신경전문의인 저자는 아우슈비츠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로고 테라피’의 개념을 창안해냅니다. 나치의 만행.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의 학살의 내용은 이 지면에 옮기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생을 포기했지만, 누군가는 그 상황을 감내해냈습니다.
그 상황은 가족을 포함하여, 하루에도 수십, 수백명의 주변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냉철하게 판단하면 당장 죽는 것이 생을 유지시키는 것보다 더 나은 현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상황을 감내해낸 이들은 누구였을까요?
곧 전쟁이 끝나서 풀려나겠지, 하는 긍정적인 희망?
저자에 따르면 시기를 정해 놓고 낙관하는 이들은 하나같이
그 시점즈음 해서 원인미상의병으로 죽었다고 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위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의미’를 가진 이들이었죠.
가족의 품에 돌아가고 싶은 의미, 이루지 못한 꿈을 성취하겠다는 의미,
학문적 집필을 완료하겠다는 의미, 아우슈비츠의 상황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의미 등
제각기의 의미들로 무장한 이들만이,
냉철하게 말하면 죽는 것이 더 편해지는 상황에서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자기 앞의 생
셰익스피어는 우리들은 리허설 없이 무대 위에 올라,
어떤 역할을 하는지도 모른 채 연기하다 무대 뒤로 사라지는 배우라고 일컬었습니다.
세상에 던져진 우리들. 주어진 세상에서 무한히 반복되는 일상의 희비극에 짓눌려야하는 우리들.
이러한 아이러니를 보노라면, 우리들은 정녕 삶을 살아가는 것일까요. 아
니면 우리 앞에 주어진 삶을 구경하는 것일까요.
으으으 으으으 으으으
자기 자신 앞에 주어진 나, 라는 단 하나의 생을 어떻게 다뤄야할까요.
거시적 세계에서 홀로 존재하는 미시적 개인.
이러한 상황에서 출발하는 실존적 물음은 모든 이들을 찾아가서 괴롭히지는 않지만,
한번 찾아온 의문은 개인에게서 쉽게 떠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실존주의라는 사상은 제1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유럽에는 허무감과 좌절감에서 시작했습니다.
전쟁의 결과 인간의 이성, 역사의 발전, 신의 권능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생겨났습니다.
실존주의는 전쟁의 체험, 수용소에 갇혀 있던 사람들의 고발 및 증언 앞에서
허망과 절망을 철학적, 문학적 고찰의 출발점으로 삼았습니다.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절망감을 지성으로 극복하고 논리화하려는 과정에서
실존주의 철학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우발적이고 허망한 세계에 내던져진 인간은 자신의 자유에 모든 것을 걸고,
이성으로 절망을 인식해야했습니다.
이성을 가진 인간과 비합리적인 세계 사이사이에 있는 모순이 부조리인데,
이것을 논리화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긍정하며,
즉 반항하며 허무감을 이겨내고 휴머니즘을 재건하려는 노력이 실존주의입니다.
전쟁의 無에서 시작한 실존주의는, 전쟁을 겪지는 않았지만
삶의 고민이 많은 우리들에게도 매혹적입니다.
그 이유는 실존주의가 삶에 있어서의 항구적 의문들을 다루기 때문일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의 항구적 의문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어떻게 살 것인가.
이룰 수 없는 꿈을 어떻게 바라보아야할까. 혹은 어떤 것이 인간적인 삶인가.
의문들에 희미할지라도, 실존주의가 방향성을 제시해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우리는 실존을 바라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들 –시험 준비를 하던, 원하는 것을 배우던,
술을 마시던, 연애를 하던, 일을 하던, 돈을 벌던, 돈을 쓰던-
어쩌면 불안감이나 허무감을 향한 말 걸기이기도한 우리들의 행동들은,
항구적 의문에 어떤 답을 내릴 수 있고,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시하게 여기는 개인주의적 세상에서,
이러한 가치들은 어쩌면 삶에 짐이 되기도 합니다.
주어진 방향성이 아니라 설계해가는 방향성에 따라 자신을 이동시켜야하니까요.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인간은 외적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어도 내적으로는 방황하는 법이지요.
사실 실존이나 로고테라피나 삶의 의미 등등. 그럴듯한 전문용어들을 인용한다고 해서,
제가 지금 발 붙이고 있는 세상이 나에게 던지는 의문들에서 자유로워지리라 믿지 않습니다.
그럼 에도 독일의 시인, 릴케가 말하는 것처럼.
질문을 잊지 않는 한 그 답 속에 살고 있는 자신을 만나리라 믿기도 합니다.
부조리 안에서도, 우리 앞에 주어진 자기 앞의 생이 무의미하지 않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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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무겁게 다가온 문장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선댓글후감상 비교하지말자님글은 항상 남은하루를 깊은생각에빠져살게하네요. 감사합니다
아 이유모를방황 ㅠㅠ 저도 요새 책 들고 도서관 주위를 뱅글뱅긍 맴돌기만 하면서 마음 못잡고 있었는데 뭔가 글일뿐이지만 누군가한테 이해받은 느낌이라 상당히 좋네요.
비교하지 말자님의 글은 항상 저에게 많은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한때 저도 많이 고민했었던 주제네요 ㅎ 그땐 허무주의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거시적 관점에서 볼 때 찰나의 순간을 살다 가는 인생 죽으면 아무 의미없을 텐데 라는 생각 등등.
허나 이때 제 인생의 목표이자 꿈을 찾았습니다.
'행복해지자' 라는 것입니다. 헌법에도 적혀있는 행복추구권. 결국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고통을 견디는 이들을 반례로 드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허나 이도 곧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것에서 오는 믿음, 어떤 목표를 향해 쾌락을 딜레이한다는 것에서 오는 행복 등으로 억지스럽게나마 설명이 가능합니다.
그 후 인생에서 궁극적으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것을 삶의 목표이자 꿈으로 설정하고 살아갑니다.
여태까지 하나의 방법을 찾았습니다. 바로 '봉사'입니다. 남을 위한 봉사를 함으로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행복 중 일부를 느낄 수 있는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학들어가자마자 봉사를 실천하려고 하고 있습니다.(현실은 재수생 ㅠㅠ ㅋ)
일단 사춘기시절 비슷한 방황을 거치며 얻은 저의 미약한 의견입니다 ㅎㅎ
글쓴이를 비롯한 이런 모든 고민을 하는 이들이 해답을 찾길 바라며 이만 ㅋ
저도 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사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정을 '자살'이라는 도구를 통해 언제든지나 자기의지로 그만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인생이라는 것을 자연적인 죽음이 올때까지 살아가죠. 그 이유는 인생을 계속 삶아감으로 얻는 가치가 죽음이라는 가치보다 더 크기 때문에 그런것은 아닌 것일까요? 그럼 인생을 계속 삶으로써 얻는 것은 무엇 일까요. 왜 우리는 공부를 하고, 결혼을하며, 직장을 가지며 살아갈까요? 저는 이 모든 것의 답이 '행복하기 위하여'라는 답으로 귀결 된다고 생각합니다.
p.s. 저도 실존주의에 대해 알아봐야겠네요ㅋ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됩니다. 의미가생기고 목적이 생깁니다. 우연이아니라 필연이되고 허무가 아니라 의미로 가득차며 유한이 아니라 무한의 삶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간 내적으로 실존주의에 대한 고민은 그 자체로 상대적인관점에서의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냥 깊은 생각없이 의미없이 주체적르로만 살아간다면 모두다 동등한 삶이라는 뜻인가요?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비극이나 방황은 왜 존재하는것일까요? 그저 남들에게 이끌리는 삶을 살아서? 아니면 라이프 이즈 포 리빙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해서?
물론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것이 항구적의문에 대한 충분조건이라고 생각치는않지만.. 의미를 모르는 삶은 조금은 공허하지않나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