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랏멍뭉이 [503209] · MS 2014 · 쪽지

2020-11-03 19: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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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전과 후 서울대 합격 수기 1. 동기와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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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 목차가 정리되어 있으니 필요한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 https://www.orbi.kr/00032911503

이번 글은 제 수험 생활의 1. 타임라인과, 2. 문->이 전과를 결심하기까지의 동기 그리고 목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글이 너무 길어 탈고하지 않았습니다. 비문이나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으니 너그럽게, 천천히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번 글은 1. 중 2015. 5 초순까지(본격적인 전과 공부 전)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1. 타임라인


앞으로의 일들은 크게 시기에 맞춰 이렇게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볼드 처리된 부분을 이번 글에서 다룹니다.


2014. 11 - 2015 수능 (문과 응시)

2015. 4-5 - 키우던 강아지가 심장사상충으로 아픔

2015. 5 초순 - 학교 자퇴, 16 수능 준비

2015. 9 - 16학년도 9월 모의고사 응시

2015. 11 - 16 수능 (화1 / 생1)

2016. 2 - 정시 전형 마무리, 가/나/다 군 모두 예비로 탈락

2016. 3 - 17 수능 준비 결심 (생1 / 지2)

2016. 6 - 6월 모의고사

2016. 9 - 9월 모의고사 

2016. 11 - 17 수능

2017. 2 - 정시 전형 마무리, 가/나/다군 + 카이스트 모두 합격




2. 문->이 전과를 결심하기까지의 동기 그리고 목표

제가 열네 살 때, 살이 너무 빠져서 병원에 갔더니 1형 당뇨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생명과학 1을 공부하시는 분들은 아마 알겠지만, 당뇨병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구분됩니다. 인슐린(혈당 조절에 관여하는 호르몬)은 생산되지만 생활 습관 등의 이유로 몸이 인슐린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 2형, 그리고 모종의 이유로 췌장의 베타 세포가 파괴되어 인슐린을 아예 생성하지 못하는 1형. 저는 후자에 속하는 셈이지요.


어렸을 때는 잘 몰랐지만 그 이후 제 인생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자동으로 조절되는 혈당을 저는 계산을 통해 주사에 의존해 정상 범위로 맞춥니다. 자동 조종되는 기어를 굳이 수동으로 놓고 운전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겠네요. 


이런 상황은 진로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실제로 인문계열/이공계열 진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고1 말, 1형 당뇨 환우 카페에 들어갔던 게 기억이 납니다. 거기에는 당뇨 환우로서 겪는 불이익이 상세히 묘사되어있었고, 특히 남자 환우들의 경우 군대에 들어가지 않으므로 간접적으로 그 이유를 묻게 되는 상황이 오는데 아무리 상세히 설명해도 ‘결격 사유 있는 인간’으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걸 듣고 아, 내가 미래에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은 굉장히 한정되어있겠구나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문과 계열 전공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연구원’이 되고 싶기 때문이었습니다. 소득 불평등에 대해 연구하고 싶다, 롤즈 식으로 말하자면 ‘최소 수혜자’들이 제도의 혜택 안으로 안전하게 편입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다 뭐 이런 이유였어요. 


안타깝게도 그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6/9평 때 한국사(4등급..)를 제외하고 서울대 합격 가능권 성적을 받았던 저는(거의 국수영 합해 1-2개 정도 틀렸던 것 같습니다) 비슷한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 수능 전 미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당뇨 환자인 제가 시험을 치게 될 환경에 대해 상세히 질의하게 됩니다. 


크게 두 가지 주안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전자기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당뇨 환자들이 혈당을 관리하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1형의 경우는 크게 세 가지가 필수적입니다. 하루의 혈당 조절 베이스를 깔아주는 기초 인슐린, 식사 시 당 조절을 위해 빠르게 작용하는 초속효성 인슐린, 그리고 혈당치를 측정해주는 혈당기. 이 중 혈당기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인터넷이나 와이파이 기능이 없지만(찾아보시면 알겠지만 액정이 전자계산기에 가깝습니다) 어찌됐든 전자기기니까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부정행위의 가능성이 있게 비춰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두 번째는 저혈당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혈당수치가 비정상일 때를 크게 두 가지 케이스로 분류합니다. 고혈당과 저혈당. 고혈당이 무서운 이유는 보통 장기적으로 혈액순환에 악영향을 미쳐 모세혈관류 질환(손/발 피 안 통함으로 인한 괴사, 혈관이 얇은 눈의 합병증 등)에 걸릴 가능성 때문이지만, 저혈당이 무서운 이유는 실신 때문입니다. 몸에 기본적인 포도당이 공급되지 않으면 컴퓨터 전원이 꺼지는 것처럼 모든 활동이 차단되니까요. 의식이 없어진다면 환자 본인에게도 안 좋겠지만 수능을 치는 친구들에게도 굉장한 방해 요인이 될 수 있겠지요(슬프지만).


저는 그 당시 혈당 조절이 잘 되었고, 고등학교 3년의 모의고사 중 단 한 번도 저혈당으로 인해 실신한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학우들 중 제가 당뇨 환자라는 걸 아는 친구 자체가 그리 많지 않았고요. 따라서 혈당기가 부정행위의 가능성이 없으며, 저혈당으로 인해 피해를 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당시 분당 서울대병원에 다녀 주치의 소견서를 첨부했습니다)를 보냈고, 평가원에서도 혈당기를 동반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습니다.





무사히 시간이 흘러 2015 수능 전 날이 되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오후 일찍 시험장을 미리 둘러보고, 집에 와 공부를 하고 있던 중 부모님께 연락이 옵니다. 제가 시험보는 고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이라고 하십니다. 오후 9시 정도였습니다. 학교에 다시 올 필요성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집에서 차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기에, 뭐 별일 있겠어 하고 간 학교 교장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장학사 분이 계셨습니다. 


일반 학생들과 같은 시험장을 배정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혈당기를 보건 선생님에게 드리고 필요할 때마다 그 분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 좋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평가원과도 미리 합의된 사항을 당일날 갑자기 바꾼다니 당황스러웠고, 한 번도 보건실에서 시험을 본 적이 없는데 그런 상황에 적응해야한다니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셨겠지요. 


서로의 입장이 완강해 이야기는 10시 넘어서까지 이어졌습니다. 그러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제가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교장선생님도 장학사분도 아시겠지만 오늘은 수능 전 날이고 저는 수험생입니다. 지금 시간에 보는 개념이 수능에 나올 수 있는 시간입니다. 이 시간이 저에게는 절실한데, 이런 시간을 저에게 뺏을 수 있는 명분이 분명히 존재해서 저희 가족을 부르신 거겠죠? 아시다시피 저희는 평가원에 사전 질의응답을 완료했습니다. 법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각오하고 얘기하신 거라면 말을 따르겠지만, 상호 피곤해질 가능성도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교장선생님은 제가 저혈당으로 쓰러질 시 수험생 모두의 손해를 저희 부모님이 책임지겠다는 각서를 쓰게 만드시고 저희 가족을 보내주었습니다. 부모님은 우리가 힘이 없어서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잊혀지지 않네요.


그 해 수능을 꼭 잘 보고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전 날의 일로 제가 컨디션 관리를 못했는지 국어에서 절고 나머지 과목에서도 조금씩 절어버리고 맙니다. 문제는 그 때 수능의 핵심 과목이 국어였다는 거죠.. (이 얘기는 수능 후기에서 마저 하겠습니다) 그 해 저는 국어에서 10점, 영어에서 5점을 깎이고, 한국사 / 사회문화 / 아랍어 각각 백분위 95 / 97 / 99를 받고 한양대 경제금융학부에 진학합니다.





한양대 생활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동기들도 재밌어보였고 대학 문화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친구들과 배경이 다른데, 이 학교를 내가 계속 다녀도 괜찮을까’ 하는 마음은 한 구석에 있었죠. 조용히 컨설팅 펌과 연구소의 리크루팅 스케쥴을 알아보았지만, 알고 보니 ‘연구원’ 은 학벌이 굉장히 큰 요소인 직업이더군요. 물론 아웃라이어급의 능력을 제가 기른다면 또 다른 얘기겠지만, 적어도 스카이가 필수적인 요건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던 중 일이 하나 터집니다. 저희집에는 중 3때부터 저랑 동고동락한 강아지가 있습니다. 학교를 다니며 강아지 상태가 별로 안 좋아보였지만, 괜찮겠지 했습니다. 어느 날 집에 오니 부모님이 얘한테 심장사상충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마음이 쿵 내려앉아서 그 길로 학교 기말이고 뭐고 싹 다 내팽개치고 강아지만 돌봤습니다.


다행히 외과적 처치가 필요한 정도까지 기생이 심각하게 진행된 상태가 아니어서, 주사를 맞고 몇 주가 지나니 강아지는 건강해졌습니다. (지금도 잘 지내고 있어요) 


그 때 직업으로서 수의사를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라는 생각을 처음 했었습니다. 강아지를 돌보면서 제가 생각보다 비위가 좋다는 것도 알았고, 원체 동물에게 마음이 많이 가기도 했었고요. 무엇보다, 면허증을 가진 전문직종으로서 오래 일 할수 있으며 제가 가진 질환이 직업 수행을 방해할 정도가 아니라는 점도 좋았습니다. 


15 수능 때 겪은 부조리에 대한 생각 또한 이런 결정에 큰 몫을 했습니다. 옛날부터 지금까지 저는 제 이런 상황을 설명할 때 ‘쓰나미’ 에 대한 비유를 합니다. 제가 만약 해운대의 주상복합 아파트에 산다면 해일이 몰려오는 상황을 조금 더 빨리 조망하고 그에 대한 대처를 할 수 있겠지만, 바닷가 앞의 작은 오두막에 산다면 혹여 쓰나미가 몰려오진 않을까, 항상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합니다. 15수능 전 날의 일을 통해 내가 가진 죄가 없음에도 약자가 될 수 있는 입장이라는 이유로 명백한 논리를 무시당하고 부조리한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항상 몸에 힘을 주고 사는 삶이 제 앞에 예정되어 있음이 너무 자명할 때, 그것을 막아줄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고 회사 생활은 어떤 측면에서 봐도 그런 무기를 갖출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보였습니다.


가족들에게 이런 생각들을 말하고, 저는 머리를 박박 밀고(..) 학교에 찾아가 자퇴원서를 내게 됩니다. 결심이 선지 2일만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동기들과 친구들 입장에선 정말 어이가 없었을 것 같지만, 결정이 확고해진 만큼 배수진 격의 장치가 제게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1년 반의 수능 공부를 시작하게 됩니다.

여기까지가 이번 편에 준비된 글입니다. 본격적인 수험 생활 수기는 다음 편부터겠네요 :) 궁금하신 게 있다면 댓글로 달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도움이 되었거나 재밌게 읽으셨다면 좋아요도 부탁드려요!

p.s : 제게 큰 동기가 되어준 저희 집 강아지 사진은 댓글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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