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항상 슬프고 고통스러워 해야만 성공한다
슬픔이라는 그 감정을 겉으로 잠깐 느낄때에는 찌질하다고들 하는데.
그리고 이런 감정을 타인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 뭔가 뒤틀려도 한참 뒤틀렸다. 배경이 안좋은가봐.
이런식으로들 생각을 하는데.
오히려 한심스러운 소리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남에게 드러내 보일때에 그때 비로소 약점이 되고 찌질한것이지.
나 혼자서 삭히는 순간에는 그 순간에 슬픔과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비로소 진짜 진가를 발휘한다.
슬픔과 우울함의 대상이 비로소 나 혼자일때,
남을 탓하는게 아니라 그 대상이 바로 나 스스로일때 비로소 슬픔과 우울함 비참함이라는 감정이 진가를 발휘한다.
사람들이 무슨 의지 타령을 하고 불굴의 열정 타령을 하는데.
그건 진짜 개 좆까는 말이고.
마치 그건 뭐냐하면, 농사를 할때 논밭을 일구려면 쟁기로 갈고 씨앗을 뿌리고 1년에 2모작 3모작을 준비하고 논을 가꾸고 이런 구체적인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완성이 됨에도 불구하고
"아 씨발 그냥 열심히 하는거야"
이지랄 하면서 모든 그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공정을 얼버무리는것과 같다.
진짜 내가 가장 가장 싫어하는 태도야. 그렇게 추상적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얼버무려버리는것들.
사람이 열심히 몰두할때에 생기는 그 감정이 무엇일것같나.
집중력. 고양감. 용기. 열정.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건 '몰입'이 진행이 되는 한창 중간의 얘기고.
그 몰입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첫발 첫단추는 슬픔과 우울함 비참함의 감정이다.
슬픔이라는 과정의 근본이 무엇이냐. 비참함. 우울함. 비명. 괴성.
정말로 밑바닥중에 가장 밑바닥인 구석중의 구석의 감정들.
동물들을 도축하는 장면들을 보면, 그 짐승들도 죽기 직전 괴성을 지른다.
짐승과 사람이 다르지만, 정말 얼마나 비참하고 고통스러운지 사람이 그 동물의 괴성을 들을때 절실히 그 동물의 감정을 느낄수 있다.
돼지이건 소건 쥐새끼건 죽기 직전의 그런 비명은 마찬가지야.
그런식의 죽기직전 괴성. 비명. 고통의 단말마. 절규. 슬픔.
이런 감정들은 그 궤를 같이한다.
"나 죽기 싫어요 죽게 생겼어요 제발 도와주세요 제발!"
단지 절규와 비명은 그 아주 그 농도가 진하고 발현 시간이 짧지만,
슬픔과 우울함 비참함은 템포가 조금 느리면서 오래 갈 뿐이다.
여기에서 궤를 같이한다는것에 포인트를 둬야한다.
슬픔이라는 감정은 다시 말해서 근본적인 생명의 생존에 가장 밀접한 인간 감정이라는 것이다.
죽기 직전의 그 처절한 감정에서 파생된 감정이 바로 슬픔 비참함 이라는 감정이다.
인간이 느끼는 다른 모든 종류의 감정들, 설렘, 기쁨, 환희, 기대, 걱정, 실망, 고양감, 자랑스러움, 등의 감정들과 비교했을때
죽음과 가장 그 거리가 가까운 감정이 슬픔과 비참함 절규 따위의 감정이다.
단지 절규는 내 눈앞에 정말 칼이 닥쳐오면서 내 목을 자를듯할때에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슬픔과 비참함은 내 현실의 모습을 직시하고있을때에 그리고 곧 죽음과도 같은 상황이 바로 눈앞에 왔다는것을 감지하였을때에,
그때 느린 템포로 생성된다.
이게 단지 형식적인 뇌피셜의 이론이고 아주 고지식한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슬픔의 감정이 배경에 깔릴때, 비로소 나는 굴러갈수있는것이다.
"제발 나를 도와줘 나를 살려줘" 라면서 슬픔과 같은 '느린 절규' 를 하게 되지만,
내 주위에 아무도 도울 사람이 없고 이 텅빈 공간에 나만이 있다는 사실을 직감하게 될때,
그때 다시 일하게 되는거다.
경사로에 멈춰있는 구슬에 윤활유를 뿌려줘 다시 굴러가게 할뿐이다.
여기에서 몇가지 질문과 반문을 할수 있을텐데.
사람의 감정과 그 쓰임새, 특징에 대한 깊은 고찰이 필요하다.
소위 말하는 용기와 자신감. 믿음 이라는 감정들로 긍정적인 미사여구를 붙이고는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사실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들여다보지를 않고 그냥 그냥 대충 넘기는데.
사실 실상은,
특히 '용기' 라는 인간 감정은, 일시적인 대상을 만났을때 짧은 시간에 확신을 갖고 어려운 대상에게 움직이는것이 용기이고.
전쟁터에서 잠깐 몇분 충돌할때 흥분감과 동반하여 고양되어서 쓰일 필요가 있는 그런 감정이 용기다.
열정도 마찬가지다. 열정은 너무나 포괄적인 대상을 겸하는것이 문제다.
실제로는 열정열정하지만,
그냥 여느 다큐멘터리에서 그 숱한 열정 강조하듯이, 태릉선수촌에서 사람들 운동하고 땀흘리는 그 장면만 찍어다가 '열정' 따위 운운한다면,
그냥 5살짜리 애이던 200키로 초고도비만 파오후이던 하루에 2분 운동 잠깐하고 땀 흘리면서 헉헉거리는 장면 그 잠깐만 찍어둬 '열정'이라고 갖다붙일수 있는것이다.
실제에서는,
당신이 정기적으로 하루 몇시간 이상씩 공부를 해서 시험을 붙는걸 목표로 하던,
아니면 하루 몇시간이상 몇년씩 투자해서 살을 빼고 몸을 가꾸던간에,
아니면 하루 19시간 일에 미쳐서 완전한 일중독자가 되어서 돈을 많이 버는게 목적이던,
실제에서 필요로 하는 감정은 '용기' '자신감' 따위보다는 비교할수도 없이 굉장히 무겁고 느리다.
일이라는게 어려운 이유는.
굉장히 오랜시간을 질척거리는 변수가 많은 현실에서 스스로 해답을 찾아서 가야한다는것이고.
그 가는 길중에, 대개 맞닥드리는 경우란, A 이라는 루트를 통과하여 도착하면 B 라는 보상을 받을수 있겠다 이론을 세우고,
막상 그 길을 가다보면 A-1 이라는 문제를 만나게 되고, 시간은 지체되게 된다.
그리고 그 A-1이라는 문제 안에 예기치 않은 또다른 문제 A-1-1을 만나게 되고,
A-1-1 안에서 또 다른 다른 문제 A-1-1-1 을 만나게 된다.
또한 만약에 그런 숱하디 숱한 장애물 A-2-1 , A-2-6 , A-3-1, A-4 따위의 무수한 예기치 못한 문제들과 장애물을 뚫어서 목적지에 도달했다 가정을 한들,
실제로 이론대로 B라는 보상을 얻는게 아니라 A+59 아니면 B-27 같은 엉뚱한 현실을 발견하게 될수 있는것이다.
맞닥드릴 현실이란 절대로 용기 자신감 열정 패기 노력 이따위 추상적인 쓰레기 언어들로 포괄되고 정의될수있는게 아니다.
굉장히 오랜시간, 얼마동안의 시간동안에 이 과제를 달성할수 있느냐를 놓고,
수많은 요소로 매일같이 컨디션이 달라지는 당신을 상대로 매일 각기 다른 함정으로 괴롭히면서, 당신이 한번 헛발질하거나 루트 잘못가면 조지는 게임이다.
숱한 사람들이 머릿속의 그 잘난 이론만 가지고, "아 이거 어떻게 어떻게 하면 되겠는데?" 하지만, 실제로 성취하는 사람은 1000명중에서 1명도 안된다.
500명은 순전히 자기만 똑똑하다는 고양감을 느끼는 용도로 이론만 곱씹어보고 귀찮다고 시도도안하고,
499명은 시도했다가 시간 돈 에너지 세가지 요소 전부 다 버리고 도중포기 실패로 끝나는 사람들이야.
인생에서, 그런 비루하고 추상적인 쓰레기같은 이론을 가지고 마치 이미 성취를 한 양 자랑스러워하는 인간들을 비웃는듯한 실제의 현실의 일들이,
인생을 사는 수십년에 걸쳐서 끊임없이 일어날거다. 그 목표가 돈이던 일이던 인간관계이던간에. 끊임없이 끊임없이 일어날거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진행을 할때에, 그 첫단추가 대개는 두가지의 감정인데.
긍정적인 용기 희망 기대" 아니면 "아 씨발 이거 아니면 진짜 나 인생 뒤진다"
그 특유의 탄성과 끈기는 긍정적인 결과를 깔고 갔다가 한번 장벽이나 장애물에 부닺힐때 실망하고 돌아올법한 그런 긍정적인게 아니라,
"아 씨발 나 이거 아니면 진짜 뒤진다 자살한다" 이게 더 탄성있게 쉽사리 부서지지도 깨지지도 않은채 쫀쫀하게 오래 간다.
"긍정적인 용기 희망 기대" 이따위 감정은 5살 어린이때 유치원에서 산타할아버지나 부모님이 포장해주는 선물 뜯으면서 느끼는 감정이지.
요행 바라면서 "긍정적인 용기 희망 기대" 이따위 단어로 좋게 포장하라고 쓰는 정신승리하면서 감정이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또 다른 함정이 존재하는데,
그런데 슬픔을 얘기할때에 "남이 나 안도와줘서 너무너무 슬퍼요 흐허엉" 하면서 끝까지 자기 비탄에 젖어
그런 감정들 구실로 나를 '방만'하도록 냅두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 그런 사람은 그냥 죽어야 된다.
어차피 남에게 짓밟히던 자기 혼자 자살하던 죽을 사람은 죽을 사람이기 때문에.
차라리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그 자리에서 아무 동정도 바라지 말고 그냥 그 자리에서 그대로 자살해 죽어라.
사람은 자기 스스로가 소유하고 자기 스스로를 증명하는 과업이며 과정이다.
처음부터 탄생이 비참한 장애인이라면 이런 극단적인 얘기는 해당 안되겠지만
이를 부정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런 스스로의 증명 과정을 생략하고 비루한 요행만을 바라며 삶에 핑계를 댄다.
자기자신의 삶에서 자기 스스로를 증명할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그것은 특권이며 사명이다.
이 한번 사는 삶에서 숱한 몇십억명의 사람중 이 과업을 수행할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그것을 깨닫는 사람이야 만이 진실로 그 스스로의 인생을 소유하게 되는것이고,
그 때 그 순간, 남이 더 돈많은집안에서 태어났다거나, 잘생겼다거나, 선천적으로 잘났다 못났다 따위의 요소들은 중요하지 않다.
나를 증명하는 과업을 포기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음에도 본인의 인생을 본인이 소유한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들러리로 살기를 스스로 자인하며 천명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죽어도 좋다. 그런데 웃긴점은 죽어봤자 당신을 향해서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고, 슬퍼해주지 않을것이며, 종래에는 땅에 묻히거나 었었음에도 없었듯이 사라질뿐이다.
돈많고 잘나고 아니면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자수성가 하는 사람도 종래에는 이슬로 먼지로 흙으로 사라지지만
진짜 나의 육신과 실물이 그렇게 결말을 맡는것과는 별개로,
진짜 차이점은, 내가 눈떠있고 내가 느끼고 내가 생각을 하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의 단 한번의 삶 동안에, 내가 한번이라도 내 삶을 받아들이고 소유했냐는데에 있다.
어차피 이 세상이 모두 거짓이라 할지라도 나 스스로를 증명해줄 사람은 나 뿐이다.
이 세상에 내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나의 눈으로 남을 보며 부러워하고 나를 비하하지만, 실제로는 그 사람도 내가 아니고 나는 감정을 느끼는 상황일 뿐이기 때문에, 모든게 거짓이라고 할수있지만.
다만 내 자신은 나 스스로가 존재하고 살아있고 의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할수있다. 그것은 오로지 나만이 할수있다.
그것이 바로 한번 사는 삶의 숙명이며 과업인것이다.
그럴 준비가 스스로 안되있다면 느끼는 동안 고통스럽고 시간만 아까울 뿐. 그 자리에서 죽는게 낫다.
그리고 삶에서 모든 결과와 우열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것은,
이 세상에서 나라는 사람 하나만이 할수있었던 나만이 소유할수있는 고유의 증명의 과업과 숙명을 포기하는것이다.
고승덕이 단국대에서 강연을 한적이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최극고난이도의 3대 고시를 모두 대학재학시절 4년안에 패스한 3관왕으로 유명한 사람답게, 자기 공부일화에 대한 내용이 주된 것이다.
위 단국대 강연 영상에서 10분에 그가 고2 시절에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나오는데.
이 때 공부를 그리 잘하지 못했던 고승덕은 반에서 수학점수 꼴찌를 한 성적표를 집에 가져다주고, 이미 인생에서 자살을 결심했다고 나온다.
그런데 "아직 졸업까지 약 2년정도의 시간이 남았는데, 이 때 동안 전력을 다하고, 안되면 그때가서 자살하도 되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으로 다시금 공부라는 테마에 마음을 다잡고 진지하게 도전했다고 한다.
남들은 허상에 빠진 나이, 고등학생시절,
고2때 자살이라는 행위를 진지하게 각오를 하고 진행한 계획에서, 그 진실하고 처절했던 감정은 결국에 역량으로 증명된다.
그런것이다. 이런 심각함 비참함 슬픔에 기반함 결심이 바로 행동력과 몰입의 가장 확실한 첫발이다.
아, 성공한 사람들은 항상 긍정적이에요 !
소위 많은 자기개발서적이나 다큐멘터리 티비에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보라고 하지만,
이는 실질적인 가능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라는것이고,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라고 권유를 하는 말은 그 가능성이 막다른 벽처럼 보여도 비집고 들어갈 곳이 있다라고 포기하지 말라는 메세지이지,
또한 부정적인 심각한 현 상황을 아예 직시도 하지 말고 긍정적인 면만 보면서 방만하라는 메세지가 아니다.
실제로는 이런 슬픔, 비참함, 심각함, 죄의식에서 기반한 낮은 분위기의 감정들이 오래 가며 결국에 그 끝을 보는 근원이다.
자신감, 용기, 열정, 이따위 잠시만 겉보기용으로 좋고 듣기 좋은 추상적이고 위선적인 쓰레기 함정같은 감정들이 아니란 말이다.
또한 이런 정말 low한 감정은, 그것을 어떻게 태동시키냐보다도, 어떻게 유지 시키냐에 달려있다.
슬프다 심각하다 진지하다 위기다 급박하다 등의 정말 숨죄여오면서도 압박감을 느끼는 감정은 정말 소중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불행한 일을 당하기도 쉽지만, 반대로 행복한일 좋은 일 따뜻한 일 웃을일이 아예 없는것도 아니다.
또 한번 마음먹은 일이 매듭도 지어질때도 있고.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유지의 문제지.
사람이 한번 만들게 되면 자신감도 생기지만, 태초의 그 처절함과 심각한 감정의 동력을 잃어버린다.
고양감과 자신감, 용기로만 일을 이끌어 나갈수는 없다. 그래서 슬픔이나 비참함 처절함 이러한 감정들은 시간이 갈수록 소중해지게 된다.
그럴때면 태초의 결심을 다시금 상기시켜야 한다.
일을 함에 있어서,
그 중간은 고양감이 될수 있고, 몰입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끝은 자랑스러울수있다. 그토록 꾸준히 바라던 성공일수있다.
그러나 첫발의 첫단추는 비참함의 되새김이고, 슬픔의 잔존이며, 심각함과 급박함으로 움직이는 행동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리고 성취가 겹겹히 쌓일수록 쉽사리 없어지는 감정은 사실 그저 과거의 잠시뿐이었던 불행한 단편인것만 같아도,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행동기제이자 소중한 재료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한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성공의 성취도가 높다한들 슬픔이나 절망 심각함 등의 감정이 행동의 가장 강력한 촉발기제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또한 다르게 얘기해서, 슬픔이라는 감정에 대한 고찰을 떠나,
모든 일의 성취는 철저히 그 일을 진행하고 담당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 정말로 솔직하고 진실했느냐에 달려있다.
1. 이론을 앞세워서 스스로 의기양양하게 느끼는 새끼도, 결국에 이론의 가벼운 허울만 믿고 자기고양감의 재료로 삼을뿐, 실제 성취의 과중함을 무시하고 스스로 잘난것만 광고하고싶은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소인배다.
2. 성공한 사람들은 긍정적이다 따위 긍정론을 듣는 놈도, 순전히 방만하고 태만하기 위한 구실에만 긍정하며 행동은 뒷전이고 결국에 자기 편하겠다는 심보다.
3. 비참함과 심각함을 강조하는 사람들 와중에 , 자기 자신에게 말하기 보다 오로지 남 앞에서만 비참함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공짜 도움을 받는등의 요행을 바랄뿐, 절대로 스스로 행동하지 않으며 스스로의 인생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남이 얹어주는 허울에서 가짜 인생을 살고싶어할뿐이다.
대개 스스로가 결심을 했다고 믿는 이는 모두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서 영웅이나 위기를 극복한 자수성가의 인물로부터 영감을 얻어 어설프게 따라하지만,
현실은 그런 평균적인 사람을 위해 일시적으로 위안을 주기 위한 드라마 따위와는 달라서,
과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간 스스로에게 진실된 사람에게만 성취라는 열매를 준다.
결국에 무엇을 결심한 순간 몇년 몇십년에 걸쳐서 그 결심을 곱씹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수 있느냐의 문제다.
네줄요약
1. 일의 성취에 있어서 실제 성취가 이루어지기까지는 만화나 영화보다 훨씬 더 끈적끈적하고 복잡한 과정이 몇년 혹은 수십년에 걸쳐서 일어난다.
2. 긍정적인 의지를 표상하는 열정, 자신감, 노력, 믿음 등의 감정은 추상적이고 쓸모없는 쓰레기중에 개쓰레기이다. 개인이 긴 시간동안 온전히 이끌고 가기에 전혀 맞지않는 감정들이다.
3. 모든 일의 진행에 있어서, 그 첫발의 시작은 비참함, 절망감에 있고, 이와같은 감정을 남에게 하소연하는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에게 돌릴때 진정한 일이 시작된다.
4. 한번 성취를 맛본 사람은 비참함과 슬픔의 감정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고양된 자존감과 과시욕을 버리고 우울하고 낮은 종류의 감정들을 소중히 하고 유지해야 더 높은곳에 갈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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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지
좋은 글인데 반박하자면 영어 ebs에 슬픔이 아니라 분노가 이런 역할을 한다고 함. bye.
Anger, not sadness
줜나 좋은 연료인건 맞지만 자칫하다 엔진이 고장나버릴 수 있음.
그냥 연료나 계기 그 정도에서 그치는 감정인데 저걸 항상느끼며 끌고간다는건 너무 불쌍한디
3줄요약좀
너무 길어요
절벽에서 산삼이 자라는 법
어우 오글거려 인생 다 산 현자마냥 글 쓰는게 좀 역하네요ㅋㅋㅋ 예전 싸이월드 보는 줄
입시판 싫은 이유가 이런 방구석 철학자들이 많아서인데ㅋㅋㅋ
난 그냥 평범한 글이라 생각했는뎅...싫어하시는 분들이 많넹
성공에 대해 단정짓는 태도가 보기 좋지 않아서요...
좋은글.
시리즈인가요?
계속 연재해주세요.
전달하려는 내용 자체는 좋은 글이라고 생각하는데 어투가 단정적이고 다른 삶에 대해 조금은 공격적인 측면이 많아서 보시는 분들이 불편해하시는 듯해요 다만 개인적으로 글을 통해 언뜻 보이는(저 혼자만의 착각일 수도 있지만) 작성자분 스스로 이런 확고한 신념을 가지기 위해 지나온 인생에는 존경을 표합니다
첨언하자면, 정독하면 할 수록 저같은 사람에게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위로가 되어주는 글이네요.. 앞으로 힘들 때마다 떠오르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전왜실패했을까요?
뭐 좀 오글거릴 순 있어도 난 읽으면서 공감가는 부분이 정말 많음.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그런 것들? 인 거 같음
밑바닥에서 성적 끌어올린사람 들은 이거 ㄹㅇ공감할듯
요즘 제 상황에 너무 잘 맞아 떨어지는 말들이라 깊이 공감하구 가요.. 진짜 좋은 글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가끔 저도 힘들고 슬플때 남한테 기대면서 요행을 바랄 때가 많았는데, 온전히 받아들이면서 성숙해지도록 노력할게요.... 종종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해요!!
수험생한테 비참함은 필수임 최고의 동기거든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몇몇 댓글은 너무 싸가지가 없네요. 보기싫게
이건 겪어본 사람만이 안다 게다가 워딩도 꽤나 센편이라 반응이 생각보다 좋지못한거 같은데,,,
입시판에서 이딴 감정을 왜느끼냐고 가소롭다 여길수있는데
사실 간절히 목표를 갈구하는 모든 상황에서 적용이 됨 예를 들어 롤?
어떤 가벼운 상황에서도 인생에대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생각함 (뇌피셜 맞다)
글삭하지말아줘요
한번 성취를 맛본 사람은 비참함과 슬픔의 감정의 소중함을 잃어버리기 쉽다. 고양된 자존감과 과시욕을 버리고 우울하고 낮은 종류의 감정들을 소중히 하고 유지해야 더 높은 곳에 갈 수 있다
그저 글쓴이 본인 생각을 진리인 양 써놨네
한 백년인생은 살아본 사람인줄 알았음
별로 공감도 안됨
글솜씨도 너무 최악;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임
이 글에 위안과 자극을 받으시는 분들은 이런 삶의 태도가 정말 주체적이고 멋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비난하는것이 아니라 궁금해서요. 저도 틀렸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위에 이 글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쓴 사람입니다. 궁금하다고하시기에 제 입장에서의 댓글 한 번 남겨보자면..(다른 분들은 각자 다른 이유가 있으시겠지요 오로지 제 입장일뿐입니다)
저는 먼저 어떤 사람의 가치관이 확고하게 굳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걸 느끼고 많은 걸 생각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저는 그 과정들을 매우 존중하며 인생에 있어서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구요. 그렇게 형성된 확고한 가치관이 남의 비웃음을 살지라도 보편적 윤리관에만 어긋나지 않으면, 전 정말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가치관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그사람 인생이 존경할만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 과정은 분명히 순탄치만은 않았을테니까요. 더욱이 느끼기에 좋지 않은 감정, 극단적인 감정을 긍정하시는 작성자님의 가치관은 많은 숙고를 통해 나왔을 것이라 감히 생각해봅니다..
두 번째는 동질감에서 나오는 위로겠지요 절박함 슬픔 좌절 이런 감정들은 그 감정들을 강렬히 느껴본 누군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니까요. 이런 점에서 바라보면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이 생각나네요 제 생각에는 평가가 많이 갈리는 작품인데요.. 어떤 사람은 자기연민에 빠진 나르시스트, 나까지 우울해진다 라고 평하는 반면 어떤 사람은 이 책을 통해 위로를 받았다 라고 하죠 물론 세계명작과 작성자님의 글을 비교선상에 놓으려는 것은 아닙니다만(작성자님 죄송합니다..ㅎㅎ) 이 글과 댓글들을 보면 조금은 비슷한 양상인 듯합니다
물론 위로와 자극이 된다고 작성자님 글의 모든 가치관이 제 가치관과 부합한다는 것은 아닙니다..(저는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만 글에서 묻어나오는 처절함 독기 이런 감정들이 제 마음을 크게 뒤흔드네요
글재주가 없어 잘 읽히실런지 모르겠습니다 그저 저 또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조금이나마 댓글작성자 분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써보았네요 좋은 밤 되시길 바랍니다
아니 뭐 멋있다 주체적이다 라기 보단 그냥 제가 비참했을 시기를 다시 돌이키게 돼서요. 그 때 정말 죽기 직전이었는데 오히려 그 감정 때문에 악에 받쳐 하니까 실력적으로나 인격적으로나 굉장히 큰 변화가 있었거든요. 근데 그리고 다음해에 기존 감정을 안좋은 부정적인걸로 생각해서 없애고 긍정, 용기 이런 걸 모토로 삼으려하면 오히려 지속할 수 있는 에너지가 안 나오고 현실에 안주하게 되더라고요. 제 나태함에 대한 합리화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글을 보고 공감이 참 많이 되네요 개인적으로는. 그때 제 한계를 깨게한 원동력은 그 비참한 감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공감이 많이 됐습니다.
로그인하게 만드네요 ㅋㅋㅋ 개인적으로는 동감합니다만, 글 전반에 극단적인 일반화가 잔재되어 있어서 읽는 이에 따라 심한 거부감이 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든 사람들이 '최고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살지는 않습니다. 꼭 주인공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끊임없는 노력보다 적당한 체념이 스스로의 행복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글쓴 분이 정의내린 '절박함의 성질'을 남들에게 강요할 수 없고, 자신의 고통으로부터 도망친 모든 이들을 죽어야 하는 사람이라고 단정짓는 것 또한 명백한 잘못입니다.
물론 자신의 한계 지점을 맞닥뜨리고 죽음 직전에서 다시 돌아와본 사람이라면 '절박함만이 발전의 지속적인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의 뜻은 이해할 겁니다. 아직 제 인생이 완결되지 않은지라 저도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제가 여태까지 경험한 감정 중 '절박함'이 가장 지속적인 노력을 실천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다만 긍정적인 감정이 무쓸모하다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네요. 긍정적인 감정이라는 것이 꼭 자기가 보고 싶은 면만 보며 합리화하는 안일한 태도를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자기 확신, 타인에게 보답하겠다는 의지, 스스로에게 좋은 인생을 선물하고 싶다는 바람 등이 없으면 사람은 결코 다시 일어날 수 없습니다. 현재의 행복보다 미래의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라면 그 모든 절박함과 긍정적인 감정을 이용하여 자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죠. 글쓴 분께서도 자기 자신의 가장 밑바닥의 감정들을 그대로 '이용'하여 스스로에게 더 멋진 인생을 선물해주실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너무 극단적이고 비관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요.
아 지적하겠다는 의도로만 로그인 한 건 아니었어요 ㅋㅋㅋ 쓰다보니 그렇게 됐네요 제가 가끔씩 잊어버리던 그 비참함을 상기시켜주신 것에 대해서는 감사해요 어쨌든 인간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 한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혀보거나 습관을 고치려 들지 않으니까요. 남은 40일 동안 제가 느꼈던 두려움을 잊지 않아보겠습니다.
반수하는 입장으로써.. 공감이 가네요
슬픔이던 뭐든 결국 내 자신을 믿지못하고 사랑하지못하면 아무것도못함,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되세요 다들
ㄹㅇ 맞는말 시발 미래도 암담한데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맛이라도 날 거 같음
저는 잘 보고 갑니다
수특 지문 출제하면 잘하시겠어요
아직 반수가 끝나지 않았으니.. 말을 아끼겠다만 수험생활은 행복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네요. 롤도 하고 인터넷도 하고.. 즐길만큼 즐겨도 결과만 좋으면 되니까
중학교 반 꼴등에서 고등학교 전교1등까지 오는 과정을 되새겨봤을때 참으로 공감되고 울림을 주는 글이었습니다 서서히 망각되어가고있던 그 절박, 비참 의 감정들을 다시 한번 온 몸으로 절실히 느껴보며 내년에 메이저의대정시에 도전하여 한번 더 도약해보겠습니다
영화 위플래쉬 빡빡이 교수가 생각나네요
본인의 우울을 타인에게 강요하지 마세요.
지금 본인의 우울함을 견디면 뭔가 엄청난 성공이 있을 것 같고, 큰 산을 넘어가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너무 어리고 여린 생각입니다.
혹여나 이 글을 보고 힘들어할 분들을 위해 적자면, 적어도 당신의 성적은 태도 따위보다는 당신의 타고난 머리와 쌓은 지능이 절대적으로 좌우합니다.
이외에는 실질적인 영향력이 있는 변수는 크게 존재하지 않아요.
흔히 보이는 우울이 힘이 되고 분노해서 노력하는 걸 성과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로 이는 잠깐의 조증 발작과도 같아서 충분한 상관계수를 지니지 못합니다.
과도하게 일반화된 필요없는 철학 담론에 휘둘려 지금까지 인생에서 가져온 접근을 버리지 마세요.
분노의 감정이 공부를 절박하게 꾸준히 하게 만들어주는 강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살이면 20년간 분노했나요?
분노나 절박감 따위가 아닌,
7살때부터 공부했느냐, 17살때부터 공부했느냐.
IQ가 100이냐, 140이냐.
이런 차이가 성적을 만드는 겁니다.
순공부시간이라고 하는 것, 그런 것들을 늘리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굳이 반박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주로 우울과 혼탁한 멘탈은 오히려 역량을 저하시키는 효과가 두드러집니다.
간단하게 생각해서,
분노로 20% 더 공부할 생각을 하지 말고,
안정된 멘탈로 20% 향상된 역량을 꾸준히 체화하세요.
그게 정말로 도움되는 길입니다.
제 아이큐는 115를 넘지않고 저희부모님은 전문대출신이십니다 저는 중학교때까지 시험공부라는걸 제대로 해본적이 없습니다 중학교1학년때는 거의 반 꼴등수준이었죠 이런 저도 xx고등학교의 수치다 라는 말을 듣고 엄청난 분노의 감정이 매일같이 휘몰아치며 공부에만 매진해서 결국 xx고등학교 전교1등 찍었습니다.
전 IQ가 140이 넘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명문대 출신입니다.
저는 중학교때까지 영재교육원을 다니고, 올림피아드를 다수 출전해서 입상했습니다.
고등학교때도 늘 1등이었고, 모의고사는 누적백분위 1% 이하인 적이 없었습니다.
객관적인 비교에서 저는 늘 우위에 있었고, 슬기로운검사생활님보다 어떠한 조건에서도 앞서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실패했던 처음이자 마지막은 수능이었습니다.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일반적인 상황에서의 분노와 달리 통제할 수 없는 스트레스는 절대적으로 해가 된다는걸 직접 경험해봤습니다.
저는 서울대를 1점이 모자라서 떨어졌고, 댓쓴이님이 서울대를 가신다면 저를 이긴게 되겠지요.
그 길목에서 도움이 되고자 하는 조언? 그런거 없습니다. 당일의 운, 당일의 컨디션, 당일의 멘탈, 이런건 쉽게 통제되는게 아니니까요.
다만 한가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건,
우울과 분노가 쉽게 통제할 수 있고, 내가 필요한 만큼 가져다 쓸 수 있는 것이라는 오만에서 벗어나라는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댓쓴이분처럼 공부에 관련해서는 선천적으로 모든 조건에서 우월하게 태어나신 분들은 굳이 그런 분노나 우울감과 같은 강력하고 자극적인 동기가 작용하지 않아도 당연하게 공부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선천적인 조건이 공부를 하기에 불리하거나 공부를 제대로 해본적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감정이 강력한 촉발제로 작용하여 엄청난 성적상승을 이뤄낼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20살에 실업계고 졸업하시고 제빵일 배우시다가 저와 비슷한 동기로 인하여 수능을 치고 의과대학에 진학하신 분도 봤구요
그리고 아이큐와 수능성적이 상관관계는 있다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아이큐가 측정하는 지능의 영역과 수능이 측정하는 영역이 완전히 같지는 않을 수도 있다는 문제와 연결되구요
물론 저도 분노와 우울이 쉽게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지극히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도 있구요
그러나 공부와 관련된 측면에서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도 동기로 작용할 수 있고, 긍정적인 부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기로운검사생활님도 꼭 목표하시는 결과 이뤄내길 기원드립니다.^^
제가 댓글을 쓴 이유는 지나친 일반화가 불편해서 작성했습니다.
특히 원글에서
// " 죽음과 가장 그 거리가 가까운 감정이 슬픔과 비참함 절규 따위의 감정이다.
단지 절규는 내 눈앞에 정말 칼이 닥쳐오면서 내 목을 자를듯할때에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이지만.
슬픔과 비참함은 내 현실의 모습을 직시하고있을때에 그리고 곧 죽음과도 같은 상황이 바로 눈앞에 왔다는것을 감지하였을때에,
그때 느린 템포로 생성된다.
이게 단지 형식적인 뇌피셜의 이론이고 아주 고지식한 원론적인 이야기 같지만 이것이 사실이다.
슬픔의 감정이 배경에 깔릴때, 비로소 나는 굴러갈수있는것이다. " //
이런 지나치게 독자연구 철학의 내용들이 많아서 제 생각과 맞지 않아 올렸던 내용입니다.
좋은 밤 보내세요~
성취와 성공은 성적이 아닙니다
백퍼 공감합니다
근데 우울한 감정이 공부에 방해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던뎅...
정말 방해 많이 되죠. 하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또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난 글쓴이가 말하는 그 비참함과 슬픔의 감정을 뼈저리게 느껴 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감정이 얼마나 큰 폭발력을 주는지 잘 알아요.
내가 확신하는 바는 글쓴이는 지금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자신을 뛰어난 사람으로 만든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해 되돌아본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며 자신을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 것이라고 '믿는' 부정적인 감정들에 대한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 부정적인 감정으로 인한 일종의 '각성' (그것의 실체에 비해 너무 긍정적인 단어이긴 하네요)을 실제로 겪어본 사람들 중 그 감정의 파도 속에서 자신을 일부라도 지켜낸 사람은 절대로 이딴 형편없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난 그것을 겪는 동안 주변의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주었고, 그 이후에는 죽을 것 같은 우울감을 겪었어요.
자기 자신을 조금이라도 지킨 채 미래에 올 행복한 시간을 맞이하고 싶다면,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이용하려고 하지 마세요. 진짜 제발요. 이런 데서 누굴 비판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걸 너무 잘 아는데, 글을 읽으면서 너무 화가 나서 뭐라도 써야겠네요.
그 '각성'을 겪었기 때문에 지금의 위치가 만들어진거 아닌가요
아뇨... 별로요.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얻는 것보다 잃는 게 수십 배는 많은 일이에요.
근데 댓글 너무 공감되는 말이네요
저도 그런 '각성' 을 겪고 제 자신을 잃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어요
그리고 항상 그런 자극과 같은 촉발제를 찾아 헤매고 있어요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글쓴이 께선 저 "각성" 에서 뭘 느끼신건지 몰라도 저는 그 각성에서 일부라도 지켜내면서 정말 많은사람들에게 상처입히고 신세졌어요 그 파도를 진짜로 겪어봤다면 "감히" 통제할수있단 생각을 할수가없죠..
저는 이 글에 일정부분은 공감합니다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좋은 환경과 재능을 타고난 사람처럼 물흐르듯 성공의 길에 들어서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저런 부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하나의 계기가 필요합니다
다만, 댓글에서도 많이 지적이 나왔듯 자신이 우울과 분노를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과, 그것이 나를 더 강하게 할 거라는 믿음 내지 기대로 자기위로를 해선 안되겠죠
저정도의 우울을 마주한 당시에는 저렇게 생각하고 우울에서 벗어나는 것도 나름의 방법이겠지만 결국에는 객관적인 상황과 더불어 이겨내야할 과제가 될겁니다
그리고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도 맞는데, 굳이 느껴볼 필요는 없을 것 같네요
애초에 자살시도를 할 정도의 우울에서 실제로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을 겁니다
마지막 문장 공감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의 일에 집중해서 성취를 이루는 것과, 성취를 이루기 위해 부정적인 감정을 일부러 마음 속에서 배양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죠. 전자는 합리적인 태도이지만 후자는 스스로를 파괴할 뿐인데, 글쓴이는 자꾸 후자를 유도하는 것 같네요.
오르비 눈팅만 하다가 몇년만에 댓글남기네요. 사람들은 각자 다 자기의 아픔이 제일 크죠 그러니 여기 댓글 남기신 분들 포함 대부분 그런 감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거에요. 애초에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기질이 우울한 사람들도 있구요.
저도 뭐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힘든 상황에 여러번 놓여봤고 하루하루가 얼마나 지옥이었는지 몰라요. 그 지옥이 끝나면 또 다른 지옥이 있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제가 불행을 즐기는 사람이 되어있고, 주변사람들을 다 떠나게 만들거나 떠나게 되더라구요.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다 예전의 저처럼 혹은 글쓴 분처럼 불행을 원동력 삼아 살아가지 않아요.
저는 애초에 이런 부정적인 감정에 맛들리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해요. 너무 그 감정이 심해지다보면 주체를 삼키게 되는데 그덕분에 정신과 신세까지 졌어요. 약먹어도 나아지는 게 없더라구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이 결국 가르키는 건 심각한 자기혐오와 자기연민이고 그건 본인을 아예 신뢰조차 하지 못하게 만들어요. 본인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읽고 문제를 풀수가 있겠어요. 그 감정에 매몰되어서 환상만 쫓아다니게 될걸요 결국.
사람이 매사 긍정적일수는 없죠. 갖잖은 감상은 사람을 취약하게 만드니까요. 그래도 절망과 비참함을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젠간 무너지게 되어있어요. 미래를 아무리 그려도 똑같은 불행, 그로 인한 성취, 반복되는 비참함들밖에 없거든요. 인생을 이어나갈 의미가 어디있겠어요 그러면. 미래를 그렸을 때 가슴 속에서 어떤 고양감이 솟아오르고, 내 손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는 사람이 되어야해요.
제가 좋아하는 영화중에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거기 주인공이 20년동안 작은 망치로 벽을 파서 결국 탈옥에 성공하거든요. 그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대사가, 희망은 가장 좋은 것이라고 좋은 것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에요. 매일 부정적인 감정으로 살았다면 그 역겨운 시간들을 견딜수가 있었을까요? 그리고 만약 주인공이 하는 얘기가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다면 그 영화가 세대를 대표하는 명작이 될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픔을 크게 겪고보니 희망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행복, 열정 이런 강렬한 감정들을 느끼기 위해 자극에 집중하라는 게 아니에요. 희망을 품고 살다보면 언젠간 다 얻게 될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비참함보다 접근성이 낮고 매우 어려운 방법이지만 이 길을 택해서 성공으로 나아가야해요. 그래야 무너지지 않고 오래가요.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조하지 않고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이 정말 강한거에요.
부끄럽지만 예전의 저를 보는 것 같아 글쓴이님이 안타까워서 긴 글 좀 써봤어요. 뭐 제가 몇마디 보탠다고 그렇게 강하게 자리잡힌 가치관이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런 글을 쓸때까지 많은 고통이 있었을텐데 수고했고, 40일동안 한시적으로만 지닐 감정이길 바랄게요.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말아요.
댓글 좀 보기 그런것들이 있네;;
그냥 내용만 감사합니다 하고 얻어가면 될걸 뭐하러 딴지거냐
저의 경험과는 정반대네요 공감되지 않습니다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데요
저는 제 뇌 성능을 지극히 신뢰하기에 친구들 고등학교 갈 때 대학 갈 수 있었습니다 제 뇌를 믿지 못했다면 시작할 엄두조차 못 냈겠죠
이거지 마음가짐은 긍정적으로 가져가야함
이거 진짜;;; 처절할때 간절한 만큼 일 풀리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