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를 가르치면서 드는 생각 - 이 과목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가
국어를 가르치면서 사람들은 참 불편한 것을 싫어하는구나 느낍니다. 가령, 신문을 읽는 아버지가 당연히 가부장적이라고 생각하는 건 일면 그럴 만 합니다. 모든 논리를 엄밀하게 잇기에는 처리해야 할 생각들이 너무 많으니까요. 정보가 범람하는 현대 사회에서, 모든 정보를 편견 없이 적확하게 처리하는 것은 매우 힘들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효율성을 위해 어느정도의 엄밀함을 희생한 셈이지요.
저는 그래서 국어 과목을 좋아합니다. 물론 문제풀이라는 궁극의 목표에 다소 가려질 때도 있지만, '왜 이 문제를 이렇게 풀었어? 이 선지는 왜 답이 돼?'라는 질문에 꼬리를 물고 쭉 가다보면 아, 내가 아무런 근거 없이 편하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지점이 오거든요.
지문 안에 정답이 있다는 말은 결국 내 생각을 비워내고 지문의 논리만을 투사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말이고, 이는 국어 지식의 영역(제 개인적인 견해로는 문법)을 제외한 전 영역(화작/독서/문학)에서 적용됩니다. 실제로 본인의 작품이 모의고사에 출제된 시인이 직접 문제를 풀어보고 틀린 적이 있죠. 그런데 사람들은 모의고사 문제에는 오류가 없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모의고사 문제에서 가르치는 것은 작품 안에서 도출할 수 있는 맥락, 그리고 그 맥락의 구체적인 방향을 잡아주는 <보기>를 가지고 푸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어찌보면 원작자의 관점과도 다를 수 있는, 그러나 분명한 기준을 준 것이지요.
이 '오직 근거만을 가지고 보기' 연습은 생각보다 큰 위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아무 말 안하고 신문을 읽으시는 아버지가 가부장적인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편하지만, 그럼에도 분명 삶에는 엄밀함이 더 요구되는 상황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아버지는 퇴직하신 분이고, 등록금을 벌러 아침 일찍부터 알바를 가야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미안함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데에 서툴러 애꿎은 신문만 보고 계시는 걸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문학 작품에서 정서를 판단할 때 이런 맥락들이 필수적인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아버지는 가부장적이기만 한 사람이야, 라고 단편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을 지양해야겠지요.
요즘 오르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모 학교 관련 입결 이슈에 관해 쭉 읽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느끼는 답답함을 저도 느꼈습니다 ㅋㅋㅋㅋㅋ...... 그러나 한 편으로는 이런 일이 오르비에서만 일어날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편향적인 정보가 범람하는 사회고, 때로는 그런 정보들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중립기어'를 놓기가 힘든 상황도 있지요.
그러나 저는 여러분이 불편하더라도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듣고 피드백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상대방이 이야기하는 논조뿐만 아니라 맥락도 잡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금상첨화겠고요. 왜 그러냐면 그게 더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답답한 상황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지칠 수도 있겠지요. 그럴 때는 잠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쉬는 것이 나은 것 같습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해버리고 똑같이 편협해지면 찬성을 위해 찬성하고, 반대를 위해 반대하고 혐오가 싫어 혐오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스스로는 잠시 편할지언정 소통할 수 없는 자기폐쇄적 인간이 되겠지요. 사람의 색은 다양하고 그런 다양함에서 오는 다채로운 즐거움들이 있는데, 그걸 포기한다면 편하지만 매우 좁은 시야를 갖게 될 것입니다. 어쩌면 '그 곰'님도 스스로는 매우 편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치만 그것을 행복하다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쉽게 편해짐으로써 인간다움의 꽤 큰 면을 포기하기보단 기꺼이 불편함을 택하는 것은, 적어도 제가 느끼기에는 인간(과 몇 동물)에게만 가능한 고등한 특권입니다. 미래에 대학을 가시고 나면 오르비와 국어 과목의 지식들은 단편으로 머리에 남겠지만, 모의고사를 풀면서 연습했던 것들이 여러분을 더 우아한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면 좋겠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을 투명하게 이해하고, 맥락을 섬세하게 흡수하고, 그를 바탕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거나 상호작용한다면 여러분의 의견은 그리고 시야는 훨씬 견고해질 거라 믿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합격 후 미등록(중복합격) N차 추가합격 졸업생의 합격 등등을 죄다 포함하는 걸로...
-
가군 애매하면 나군 시립대쓸랬는데 가군 성대자과계 안정이면 그냥 서강대 쓰려그여..
-
왕위계승전 초반부는 노트에 장면 정리하면서 이해했는데 대두 고양이 ㅅㄲ 나온 뒤로는...
-
성대 무근본 대학이네 13
영어 1등급이랑 2,3등급은 수준이 다른데 이걸 국어 2점보다 작게 보네ㅋㅋ 성대는...
-
저 저승합격함 5
ㅁㅌㅊ
-
에타 탈퇴해야징 6
1월에 조발하겠지 머
-
왜 나는거죠? 진학사는 745점인데 텔그는 741점 이네요. 여기는 과탐가산도...
-
1년 날아간 등록금 생각보다 출혈 많이 큰거임..
-
이런 사람에게 추천 늦은 나이까지 일하고 싶은 사람 적당한 학벌로 가성비를 챙기고...
-
생명과학과 1
자연대중에서 생명과학과가 인기있는 과인가요? 다른 자연대는 다 5칸인데 왜 생명이...
-
조금 급해서요 2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러함..
-
다 가려버려서 인증이 의미가 있나 싶긴한데 아무튼 붙은건 Factos임
-
ㅈㄱㄴ
-
연세대 정치외교 vs 고려대 정치외교
-
인스타 합격증 올리는 거 갖고 뭐라하는 건 이거같음 6
과잠입고 다닌다고 뭐라하는 거 ㅇㅇ
-
어 눈 온다 2
이쁘게 오네 ㅎㅎ 기분젛아
-
업체 추천좀
-
에피....? 2
에피 심사 보통 얼마나 걸리나용??
-
부모님께서 계속 가야된다고 말씀하시고 정 불안하면 친척집이나 기차에서 공부하라...
-
훠궈먹고 와플먹고 훠궈먹고 와플먹고.. 어어... 이래서 쌈밥도 먹는거구나! 밸런스 맞추는건가
-
지금 수1수2 까먹은거있는지확인차 개때잡 강의 듣고 있는데요.. 저는 그냥...
-
우웅
-
또 솔크 ㅋㅋ 자살
-
여러분의 생각은?
-
버스가 생까고 가버리네 10
추워 죽겠는데 6분을 더 기다리라고......?
-
마가레트 14개 먹음....
-
ㅠㅠㅠㅠ
-
연말끝나면 미루고 미루었던 다이어트 시작~~~
-
낫 밷? 많이 오른편인가요?
-
1학년 다니고 1년 휴학하고 재수 준비하는 것도 반수라고 하나요??? 위의 경우가...
-
힘의 평형 질문 2
아니 힘의 평형만 너무 이해 안가네요…왤캐이것만 어렵지이 사진에서 이미 위의 5g와...
-
인싸인 척 할 수 있음 ㄷㄷㄷ
-
2025년에는 책읽기하고 2026년에는 국어 공부할건데 낮1 가능함? 지금...
-
본인 급함(?) 8
2일동안 머리, 옆목에서 맥박 뛰는 게 계속 느껴짐 어제는 양치하다가 피 뱉었음 이거 별 일 없음?
-
냥대 인문 932점이라 냥사회는 ㄱㄴ하잖아? 현역정시 서성한 타이틀은 무조건 얻을 수 있어
-
Sax 4
-
수험생 모드 ON.
-
2학기 박고 1학년 최종 1.5떴어요 목표가 서울대 전정이라 수시론 좀 힘들거...
-
오뿌이 퇴근중 2
다들 불금인데 머함뇨
-
ㅠㅠㅠ
-
둘이서 치킨한마리 시켜서 겨우 먹음요
-
좀만 더 먹으면 배리나됨
-
서성한인재라 서성한은 ㅈㄴ 널널한데 고대는 개딸리는..
-
공학계열 가능할까요..?
-
아우우 뭐하지 2
심심하당 뭐 할거없나 빨리 합격을 하던지 빨리 떨어지...진말고... 아무튼 심심해...
-
개인적 정리 0
참인명제참 참->현실에 존재하는것 참인명제->현실에 존재하는것 대우명제는 1.현실에...
-
도망가봤자 거기서도 망할거라느니 어쩌구
글에서 전반적으로 배우신 분의 냄새가 물씬 나네요. 잘봤습니다
ㅋㅋ 저도 아는 게 많진 않아요.. 다만 제 경우에는 국어 과목을 학습하면서 가장 혜택을 본 게 저런 부분이었거든요.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서 너무 마음이 좁아지면 다 떠나서 본인들이 힘들어지기도 하고요. 노파심에 한 번 써본 글인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혹시 국어공부법에 관해 물어볼게ㅠ있는데 실례가 안된다면 쪽지드려도될까요?!
네 쪽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