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PineTree) [50039] · MS 2018 · 쪽지

2007-06-15 19: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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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의 저녁 밤하늘. (4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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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물 -

굳게. 다시는 방황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대로 끝낸다면, 자신의 나태함과 무력감속에서 살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공부에 빠져보기로 했다.

언어영역 스승님 수업도 들으면서 마음을 다 잡았다.

3년 넘게 계속해서 찾아와 강의를 들으니 선생님도 기억해주셨다.

열심히 가르쳐 주신 많은 선생님들께 죄송했다.

이번에는 합격하겠다고 마음 굳게 먹었고 절대로 점수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에 빠져들기로 했다.

4수는 부산에서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3수에서 가장 크게 깨달은 점은, 내가 생각했던 것이 잘못이었다는 점이었다.

“No pains, no gains.\"

이 속담에서 나는 Pain이 ‘고통, 희생’ 이라고 생각 했고,

고생과 희생하면서 공부를 해야만 합격 할 수 있다고 생각 했다.

공부하다가 pain을 사전에서 찾아 보았는데,

pains(복수형)의 뜻은 ‘수고, 노력’ 이었다.

그랬다. 나는 고통과 괴로움,

뭔가를 희생한다는 느낌 속에서 지난 1년을 보내 왔었고,

공부해야한다는 조바심만,

그리고 어떻게 해야 점수. 점수를 잘 받을까만 생각 해 왔던 것이다.

나의 언어영역 스승님이 하신 말씀대로...

공부 자체에 빠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이번 1년은 자연스러우면서도 최선을 다하면서 보내기로 했다.

4수를 준비하면서 나는 다시는 작년의 과오를 범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일단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12월부터 헬스를 끊어서 다녔다. 공부는 장기전.

체력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년처럼 퍼질러서 놀지 않고 간간히 공부를 하였고,

작년에 시간이 없어서 완벽하게 못 들었다고 생각 되었던

인터넷 영어 선생님의 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휴식기간 중 그렇게 열심히 하루하루 공부한 건 아니지만

그냥 약간의 준비를 하는 수준으로 보냈다.

그리고... 4수를 시작 했다.

아직도 기억한다.

처음 학원 시작 하는 날 강의실에 앉았던 그 느낌을.

3수 때의 그 이상한. 뭔가 조화가 어긋난 듯 한 강의실의 느낌이 아니었다.

뭔가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재수 때의 그 광적으로 공부하겠다는 마음 가짐과는

다르지만 집중되어 있는... 그 공간을. 나는 기억한다.

내 생애 중에서 가장 보람차고 행복하게 1년을 보냈던 것 같다.

4수 때는 나중 최종 수능에서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렇지, 성적도 괜찮았고,

생활도 정말 규칙적이고 보람찼다.

어여쁜 여자아이들도 반에 많아서 학원 가는게 즐겁기도 했다.

내가 반했던 여자아이도 있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정말 어여뻐서.

항상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4수나 했는데 더 이상 낙방할 수는 없었고, 부모님

을 실망 시킬 수는 없었기에, 더구나 내 자신을 잘 알고 있기에

그냥 친하게 지내는 선에서 만족하기로 자신을 가다듬었다.

(한 번은 도무지 참을 수 없어서 학원 내부를 뛰어 다녔다... 학원 지하에서 마음도 가다듬었다.)

4수의 기본 마인드는 \'고통과 희생보다는 자연스러움과 생활화.\'였다.

공부 자체를 생활화해서 공부하기 싫을 때가 되도록 없게 만들고

공부하기 싫을 때도 \'관성의 법칙\'으로 극복하기로 했다.

그리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기로 했다.

예전처럼 조바심이나 욕심을 가지고 공부한 게 아니라 공부 자체에 빠지니

생활도 매일매일 차분해지고 생활도 즐거워졌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자습, 수업 아무것도 빠진게 없었다.

주 공부 방법은 학원 수업을 열심히 듣고,

그 날 내용을 배운 걸 그 날 모조리 복습하는 것이었다.

1년 동안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모조리 복습을 했다.

특히 과탐은 더욱 그러했다. 3월, 4월, 5월 갈수록 성적은 조금씩 향상 되어갔다.



(복습 하면서 정리한 필기노트)

더구나 정말 좋은 4수 친구를 만나서 더욱 행복했다.

성격도 좋고 배울 점도 많은 친구 였다.

함께 있는 것 만으로도 편안했다.

공부도 잘 되었고, 서로 물어 보기도 했다.

화학 ,영어를 참 잘해서 배우는 게 많았다.

공부하는 데 좋은 벗이 있는 건 정말 행복했다.

6월 KICE 모의평가는 만족스러운 성적이 나왔다.

영어도 이제는 거의 95점을 넘기고 있었다.

다만 수리가형이 92점이었는데, 조금 불안했다. 수리 실력이 조금 걸렸다.

92점은 왠지 운이 좋아서 받은 것 같았다.

예전에 비해서 수학이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래도 꾸준하게 하루하루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고 생각했다.

6월 모의고사 등급은 1-1-1-1-1-4-1.



희망적인 점수였다.

모든 성적이 안정적이었고, 공부도 하루하루 잘 되고 있었다.


(이 괜찮다고 생각 했던 것이..

나의 큰 실수였다. 어떤 과목에 대해서 막연하게 ‘공부하고 있으니 괜찮아.’ 이런 생각은 정

말 어중간하다고 생각 되는데 그때 나는 너무 낙관적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수학)    

특정과목에 대해서 정말로 자신감이 넘치지 않는 한은 집중적으로 실력을 올려야 되는데,

나는 그냥 매일 조금씩 공부해 나갔다. 물론 수리 모의고사는 성적이 꽤 잘 나왔지만...

그해 수능이 어떻게 나올지 그때는 몰랐다.

최고의 난이도로 수리가형이 나올 줄 누가 알았을까.

97수능을 제외하고 최고의 난이도 였던 06수리 가형... )


생활은 정말 안정되어 갔고 학원생들과도 정말 잘 지내면서 학원가는 게 즐거웠다.

왜냐하면... 다시 보람차게 하루하루 공부에만 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과탐 선생님들이 참 좋으셔서 정말 열심히 배웠다.

특히 화학 선생님이 너무 잘 가르치셔서 거의 몰입하면서 들었다.

워낙 화학을 좋아 했는 데다가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시니 성적은 계속 올라갔고

자신감이 붙었다.

그 때 수업 때 수업에 집중하면서 연습장에 대충 필기한 뒤,

자습시간에 그 필기를 다시 깨끗하게 옮겨 적으면서 복습했다.

모든 과탐을 노트에 압축정리를 시켰다.



(나의 화학 1, 2 단권 화 노트들...)

정말 매일매일 성실하게 공부 했다. 나중에 정말 과탐은 자신이 붙었다.

과탐 200점 만점도 받은 경험이 있었다.



또한 영어를 정말 중점적으로 공부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 마다 영어사전을 찾았다.

영한과 영영사전을 둘 다 보았는데 주로 영한을 더 많이 봤다.




(나의 사랑스러운 사전.)

볼 때마다 단어에 표시를 해서

사전을 넘기면서 조금씩 자동 복습이 되게 공부했다.

나중에 1년이 지나자

사전의 ‘그 어떤 페이지’를 넘겨도 ‘표시’된 단어들이 보일 정도로 열심히 사전을 보았다.



영어에 있어서 예문의 소중함을 깨닫고 모르는 단어마다 사전을 찾아 용법을 찾고 예문을썼다.

조그마한 단어장 노트 (A4지 1/4크기) 인가 노트를 8권인가를 가득 채웠다.




(열심히 적은 노트들)

이건 영어 잘하는 친구의 공부 방법을 보고 배워서

나에게 맞추어 공부한 것이었는데

정말 보람차고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노트 안 쪽에서..)

위기의 전초는 9월 KICE모의고사 때 느꼈다.

다른 과목은 다 잘 쳤는데, 수학이 다시 태클을 걸었다.

수학만 점수가 좋지 않은 편이었고, 나머지는 아주 성적이 좋았다.

나는 수리를 강화하기로 마음먹고, 평소보다 수리 문제를 더욱 강화 했고,

남는 시간, 주말에 수리 인터넷 강의를 보았다.

수리 성적은 다시 조금씩 올랐지만... 90점대 초반을 맴돌았다.

이상하게도 나는 8월 후반 수리 모의고사 부터는 성적이

조금씩 낮아졌다.

수리만 잡으면 된다고 생각 하면서 수리를 열심히 공부했다.

푼 문제집에서 틀린 문제만 오려 붙여서 다시 풀고, 풀고 했다.

수능이 다가 오기 시작 한10월,

내 모의고사 점수는 470~480대 정도 였다.

거의 실점은 수리영역과 과탐 몇 문제였다.

나중에 모의고사를 치고도 학원에 남아서 공부를 했다.

대부분의 학생이 집에 돌아갔지만,

나와 몇몇 친구들은 함께 남아서 자습을 했다.


9~10 월 모의고사에서 나의 수리영역 점수는 그렇게 까지 좋지는 않았다.

11월 수리 모의고사에서 92~96점 정도를 맞고 있었다.

이번 수능이 작년 수준 정도로 나와 준다면 해 낼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10월과 11월에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공부했다.

넘기는 문제집에서 수험생용 마무리 달력을 줬는데,

거기에다가 하루를 마치고 최선을 다했으면 동그라미를 그렸다.

나는 10월 16일을 빼고는 모든 날에 동그라미를 그릴 수 있었다.

자신에게 매일 매일 충실함 속에서,

누군가 나를 보면 고달프다고 하겠지만

내 자신의 마음에는 보람참으로 가득찬 하루하루였다.







드디어 시험 날이 3일인가 남았을 때 나는 친구와 서로를 격려 하면서

충실했던 이번 한해를 돌이켜 보면서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 했다.

그리고 결과가 조금 안 좋더라도계속 친하게 지내자고 말하면서

우리는 서로를 격려 했다.

그리고. 시험 날이 되었다.

시험 전날 마지막으로 영어단어를 조금 보고, 나서

자신감이 있는 상태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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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11월. 나의 4번째 수능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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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장도 4번째 되니 정말 익숙한 느낌이었다.

이번 1년. 자신에게 물어봐도 충실했다.

이젠 그렇게 떨리는 느낌도 거의 없었다.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고 공부한 걸 믿었다.

언어영역을 풀어냈다. 역시나 문제는 깔끔했다.

문제를 음미하면서 차분히 풀었다.

다 풀고 시간이 조금 남을 정도로 정확하게 조절 했다.

느낌이 좋았다.

올해는 출발이 더욱 좋은 느낌이 들었다.

나머지 과목들도 자신 있었다.

나의. 4년.

수학시험지를 받았다. 내 목표는 92점이었다.

만점까지도 필요 없었다.

일단 최악의 경우 2문제를 못풀더라도 나머지를 다 맞추기로 했다.

하지만 7차 시험중 최고로 어려웠던 수학 시험중 하나가 이 06수학 이었다...

1~9번까지는 정확하게 다 풀어냈다.

10번으로 기억하는데 공간에서 구하나가 있고 그 구가 지나가는 공간의 개수인가를 세는 문제였다.

나는 여기서 큰 실수를 범하는데... 이 문제를 고심하면서 잡고 있어 버렸다...

안 풀리는 채로 20분 정도를 날려버렸고. 수학이 말리기 시작 했다.

그 뒤 한 문제에서 다시 막히고는 시간이 부족함을 알고 엄청나게 당황해 버렸다.

그때의 정말 암담한 기분이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당황하며 어물대고 있을 때 시험관이 ‘10분 남았습니다.’라고 했다.

순간적으로 얼이 빠졌다.

난 10문제 정도가 남아있었다.

그 때 나는 뭔가 내가 쳐오던 시험패턴과는 너무나도 다름을 느꼈다.

이미 거의 다 풀고 한 두 문제를 잡고 있거나 검토 하고 있어야하는 시간인데.

아아.

믿기 싫었지만 인정해야 하는 10분이었다.

심장소리가 들렸다.

두근 두근의 느낌 보다는 기차소리 같았다.

땀이 마구 흐르기 시작했다.

땀을 닦을 여유도 없었다.

남은 10분.

남은 10분이라도 최선을 다해야해.

최선을 다해서 3문제정도를 풀고 다시 패닉에 빠져서 우왕좌왕할 때 종이 쳤다.

아아아아.  

머리 속이 새하얗게 되어 버렸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거둬가고 나서. 나는 지난 4년이 무엇이었는가 생각 했다.

그래. 내가 수학실력이 부족했던 거겠지.

다 내 불찰이야. 내 잘못이라고. 왜 일까.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올해 수리 모의고사 만점도 받았었고... 성적도 나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멍한 상태로. 10분정도 앉아있었던 것 같다.

다들 침울한 분위기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밥을 먹을 힘이 나는 없었다.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계속 외쳤다.

침착해. 침착해. 괜찮아.

예상으로는 70점 정도 나올것 같아.

괜찮아. 나머지 과목 다 잘치면해 낼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다고. 그렇지...?........

4층 복도에 서서 하늘을 보면서 계속 서성였다..

창문이 열려있었다.

순간적으로 생각되었다.

‘뛰어내리자. ’





















‘바보 같은 녀석. 4년 동안 뭘 했단 말이냐. 그래 뛰어내리자.‘

열린 창문으로 몸을 내밀었다.

정말 한 순간의 충동이었다.

그 때 어머니와. 이때까지 공부했던 영어와 과학과목들에 바친 열정이 생각났다.

순간적으로 내가 무슨 생각을 했나 싶었다.

정말.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죽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겨우 이런 시험으로 목숨을 던지다니...

더욱 힘든 시련을 겪고 계신 분들도 많을 것이고 더 힘든 상황

에 놓이신 분도 있을 껀데...

지금도 생각하지만 수능 치고 자살시도 하신 분들.

분명히

죽어가면서 후회 하셨을 꺼라고 생각한다.

그 순간. 순간적으로 이성이 날아간 것이 아닐까...

그 순간을 참아야 한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된다...






멍한 상태에서 억지로 싸온 밥 2숟갈과 국을 먹고 영어시험을 칠 준비를 했다.

여전히 멍했지만 속으로 외쳤다.

‘내 자신에게 져서는 안 돼. 지지마라. 괜찮아. 괜찮다고.’

열심히 마음을 다잡으려고 노력하고 노력했다.






3교시 외국어 시간이 되었다... 정말 시험장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시험지를 받고 늘 하던 그대로 마지막 2지문을 풀었다.

그리고 듣기 평가가 시작되었다.

방금 친 수학의 충격으로 나는 머리가 혼미했다.

항상 듣기 평가를 할 때 그나마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 한 문제를 풀 때 마다 바로바로 마킹하는 습관을 들였었다.

이렇게 하면 몇 분정도를 벌 수 있었다.

혼미한 상태에서 듣기를 듣다가 한문제인가 잠시 고민 했다.

답이 2개중 한 개로 보였는데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느껴져서 표시하고 넘어갔다.

듣기 문제를 다 풀었을 때 나는 중간 번호부터 마킹 5개를 안했다.

그래도 시험지에 풀긴 풀어져있었기 때문에

평소보다 컨디션이 안 좋다는 걸 느낀

나는 외국어에서 시간의 압박을 느낄 껄 예상하고

나중에 마킹 하기로 하고 일단 빠르게 풀어 나갔다.

힘이 없었다. 하지만 풀어내야만 한다고 외치면서 최선을 다했다.

다 풀고 나니 1분인가 밖에 남지 않았다. 빠르게 마킹을 했다.

거의 마킹을 끝내고 있을 때 종이 쳤다. 마킹을 다하고 쓰러져 버렸다.

답안지를 걷어가기 시작했다.

걷어가고 나서야 깨달았다.

듣기 마킹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극도의 패닉이 나를 몰아 쳤다.

외국어 5문제는 10점정도의 실점이었고 이건 회복 불능이었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다.

‘아.....................아..!!!!!!!!!!!!!!!!!!!!!!!!!!!!!!!!!!!!!!!!!!!!!’

(정말 이런 느낌이었다.)

교무실로 미친 듯이 뛰어 갔다. 감독관들이 20명 정도 계셨다.

시험지와 답안지를 정리한다고 다들 바쁘셨다.

어떻게 해야 할지 멍한 상태로 괴로워있었고, 한 선생님이 왜 그러시냐고 물었다.

사정을 자세하게 설명 드렸다.

그리고.

“저기. 저 제가 마킹을 못한 것 같습니다. 저..저.. 제발. 확인 좀...”

“미안하지만 안 된다네.”

“제가 마킹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제발. 시험지에 있는 데로만 마킹 해주십시오..”

“자네 수험번호가 몇 번인가? ”

“○○○○○입니다..”

“곧 종이 칠 껄세. 남은 시험이라도 잘 쳐야 되지 않겠나. 들어 가보게.”

“제발. 제발... 부탁입니다. 시험지에 있는 데로만... ”

“곧 시험이네. 들어가게. ”

선생님들이 위로를 해주셨다.

학생이 우발적인 행동을 할까봐 잘 챙겨 주셨다.

그러나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모든 것이 끝인 것만 같았다.

과탐 시험이 시작 되었다. 자신 있는 과탐이지만 머리가 멍했다.

그냥 습관대로 풀기 시작했다.

화1을 어떻게 풀었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았다.

평소에 10분정도는 남기고 풀고 다 맞았었던 화1.

하지만 푸는데 정신이 없었다. 2

5분정도를 소요 했는데 3문제인가를 못 풀고 있었다.

나는 순간 깨달았다. 난이도가 어렵게 출제 되었다는 걸.

하지만 지금 내 상태로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수학의 망침과 영어 듣기마킹실수는 나의 머리를 완전하게 굳게 했다.

1번째 과탐 과목이 끝나고 3분의 쉬는 시간에

갑자기 선생님 5분정도가 우리 시험장으로 왔다.

“수험번호 ○○○○○ 학생. 여기 있습니까?”

내 번호 였다.

“네... 접니다. 무슨 일이죠? ”

도대체 무슨 일일까. 더 이상 놀랄 힘도 없는데.

“학생 답안지를 확인 하게 해주겠네. ”

영어 답안지를 그 자리에서 바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마킹이 다 되어있었다.

나의 착각이었을까?

아니면 선생님들이 내 시험지를 보시고 마킹을 해주 신 걸까.

나는 아직도 그 점에 대해서 모른다.

어쨌든 답안지를 확인 하고 나서 마음이 조금 안정 되었다.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아. 화학1을 패닉 상태로 푼 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그래도 포기 하면 안된다.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하자.’

이 말을 몇 번이나 속으로 외치면서 문제를 풀었을까.

생1, 지1, 화2는 제대로 풀 수 있었다.

화2는 역시나 어려웠지만... 다 풀어 냈다.

“시험 끝났습니다. 수험생 여러분 수고 하셨습니다.”

‘끝인 건가...? 꿈. 꿈이면 좋겠는데... ’

그 자리에 멍하게 앉아 있다가 사람들이 모두 나가고 나서

그제서야 발걸음을 옮겼다.

시험장을 나설 때 정말로 참담한 느낌이었다.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멍하게 걷다가 갑자기 몸이 무겁다는 걸 느꼈다.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걷는 것도 너무 힘들었다.

택시를 잡아서 집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뉴스가 나왔다.

“오늘 시행된 수학능력평가시험은....”

꿈이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정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수학이 너무나도 걱정되었다. 제발.

제발. 80점이라도 좋으니...

영어 듣기도 과연 마킹이 제대로 되었는지 의심스러웠고,

화학1은 제대로 풀지 못한 느낌이었다.

아아. 아아. 시험 전날은 홀가분한 느낌 이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

아아. 그렇지. 다 내 잘못이야. 공부가 부족 했었어...

아냐! 아니라고. 지난 4년간 충실 하지 않았냐고.

거짓말이야. 이건. 꿈 일꺼다.

“손님. 도착했습니다만...?”

“네? 아.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한다고...”

택시비를 내고 내렸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집에 들어가서 방으로 향했다.

그래. 아직 모른다. 채점을 해봐야 아는 거지.

괜찮아. 수학점수는 잘 나올 꺼야. 열심히 했잖아? 괜찮아...

괜찮다고...

사람은. 하루만에. 천국과 지옥을 오갈 수 있다는 걸.

나는 그 때 다시 한 번 느꼈다.

어제는 보람차게 공부했지만. 오늘은 왜 이럴까...

난 그 날 어떻게 잠이 들었는지 지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가슴이 답답해져 오는 걸 느꼈다.














그 뒤... 나는... 몇 일 동안을 가채점을 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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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

2005. 11. 30. 수요일.

Am 0:51.

오늘 가채점 해야 한다. 더 이상 피하기 싫다.

아직 꺾일 이유가 없다. 일단 자고. 맑은 정신으로

결과는 관계없이 최선을 다했다. 수학은 내 책임이잖아...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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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치고...나는 1주일인가 동안 채점을 할 엄두도, 용기도 나지 않았다.

수많은 모의고사의 경험으로 나는 직감 하고 있었다.

수학 성적을. 70점대로 생각 되었다.

모든 것이 하늘에 걸려있는 느낌이었다.

아아. 신이여 제발. 시간이 흐르고... 그래도 채점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른 채로 성적표가 나올 때 까지

이 미칠 것 같은 초조함을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래. 고통을 받더라도. 빨리 받는 게 났겠지. 혹시 알아..? 하늘이 도우실지. ’

입시사이트에서 언어를 매겼다.

결과는 만점이었다.

시험 때 만점일 것 같았다.

언어가 쉬웠기 때문에 만점도 그렇게 유리한 고지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외국어는 그 패닉과 듣기의 불안함 속에서도 93점인가를 받아서

다행히 1등급이었다.

과탐을 매겼다.

화1은... 역시나 3등급이 찍혔다.

당연한 결과였다. 슬펐다.

화1문제만 몇천 문제는 풀었는데... 모든 것이 한 번에 날아가 버렸다.

생물1 부터는 집중해서 풀어서...

그나마 괜찮았다.

등급은 1-( )-1-(버림)-1-2-1.

수학. 수학이 문제 였다. 도무지 매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 알고 있었다. 기적을 바랄 뿐이었다.

‘부탁인데. 80점만 넘어도 감사합니다. 이때 까지 공부한... 노력을 저버리지 말아 주세요..

부탁입니다...제발..‘

마음속으로 계속 외치면서 입시 사이트에 하나하나 답을 찍었다.

그리고... 확인 버튼을

이제 눌러야만 했다.

이. 모든 것이. 여기 달린 건가.

“딸깍.”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백분위68.

원점 60점대.

4등급.

1년 동안 모의고사 치면서 수학 가장 못 친 모의고사보다도 점수가 아래였다.

순간 눈물이 흘렀다.

모든 건.

아무 말도 못한 채. 마우스를 쥐고.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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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눈물이 흘렀다. 또 눈물이 흘렀다.

이불속에서 주먹을 쥐고. 너무나 답답해서 가슴을 때렸다.

정말. 정말로 안되는 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는 안되는 건가...

쓴 신음소리가 자동으로 가슴 깊숙한 곳에서 나왔다.

그렇다. 공부는 보람 있었고, 하루하루는 보람차게 공부 했지만,

약간의 수학 실전적 실력이 없었다.

‘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바보, 이 바보녀석아~!!’

자신에 대한 분노와 괴로움과 함께 나는

그 새벽의 어둠속에서 쓸쓸히 엎드린 채로 떨고 있었다.

‘ 세상에 힘드신 분 정말 많다. 시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잖아.

공부를 보람차게 하는 걸 배웠고,

수험생활 만족스럽게 한 경험한 것으로 좋은 거 아니니.

그렇지? 그렇잖아...’

자신이 싫었다. 겨우 시험이란 말이다.

젊은 녀석이. 이런 일로 괴로워 해야 되겠냐...

이 멍청아...



[Diary]

2006. 1. 11.

모든 것이 무너지고 2달인가.

4년 동안 매달려온 수학에서의 패배. 원점 64점과 그 뒤의 패닉.

믿었던 화1에서의 패배.

패닉상태가 아니었다 해도 잘 풀 수 있었을까.

스타도 어제 새벽에 클랜원과 붙어서 참패. 벽을 느낀다.

모든 걸 올인 한 듯해도 부족할 따름인가.

비참함과 참담함이 나를 둘러싸고 놓지 않는다.

괴롭다. 4년간의 괴로움은 나를 고립시켰고 잃어버린 자신감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한다.

가슴이 텅 빈듯하다. 뭘 하고 싶은 걸까.

죽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 가만히 있고 싶다.

생각 없이. 아아. 그것마저도 괴롭다. 나는 뭘 원하는 걸까.

활기와 열정은 어디로? 제길. 이걸 쓰고 있는 것 마저도 힘든건가.

어디부터 잘못 된 것일까.

공부의 보람을 찾은 것은 좋으나 비효율적으로 수학을 방관한 것은 아닐까.

아니. 알고 있었다.

소위 ‘달인’의 경지를 항상 경험하고 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은 내 죄인가.

변화를 꿈꾸었던 나는 이렇게 초라하다.

아니. 그렇게 내 자신이 생각 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고 있을 따름이다.

이 등○같은 놈아. 자기를 사랑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해라. 이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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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1월.

내가 괴로운 이유는 두려워서이다. 5수를 하고 싶은데,

공부를 하고 싶은데 더 이상 학원생활은 못하겠고

그렇다고 다시 공부를 해서 붙기 위해서는 더욱 공부해야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무너지니 다시 서기가 두려운 거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다. (내가 틀린 신념과 생각으로 공부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

제○. 오만인가? 그래도 적어도 내 자신에게 성실하게 3년은 보냈다.

괴롭게 바보 같은 1년도 있었지만. 두렵다.

허무하게 올해가 가면 내 자신에게 후회할꺼다.

아아. 제길. 결론은 하나. 수학을 보강하면서 나머지 리듬을 찾고 영어를 강화 시키고 수학을...

언어는 할 수 있고 수학 100을 바라는데 두려움이 내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다.

그래. 나는 두려운거다.

젠장. 괴롭다. 괴로워. 이겨야 되는데 힘이 필요해...

선생님 죄송합니다. 엄마. 미안.

제길. 제길. 등○같다. 뭐하는 것일까. 병자처럼 살아가고 있다.

살고 싶다.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가운데 하기 싫다.

제기랄! 수학이 나를 즐겁게 함과 동시에 괴롭힌다.

2개월이 흘렀다.

나는 내 머리의 지식들이 빠져 나갔을까 두렵다.

그렇게 다 사라질리는

없지만 제길.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될 리가 없잖아. 이 미○○○야. 뭘하는 걸까.

톱니가 빠진채로 글 쓰고 있는 걸까.

어머니, 어머니. 미안 ㅁ l 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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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 시간들이 지나갔을까요. 어머니 감사합니다...

5년 동안의 저녁 밤하늘 (4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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